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by 라미루이






작년 여름 제주도 가족 여행 중에 생긴 일이다.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제주 해변을 종횡무진 누비며 물놀이를 즐겼다.

서귀포에 위치한 남원 용암 해수풀장에서 아이들과 신나게 물장난을 즐기다 풀장 밖으로 나올 때였다.

가까이 설치된 철제 계단을 놔두고 딱딱한 시멘트 바닥을 양손으로 버틴 채 물에서 나온다는 것이 그만...

왼쪽에 체중이 더 실리며 손목이 살짝 비틀리고 말았다.


'찌릿'


왼쪽 새끼손가락 아래 손목 바깥쪽을 따라 날카로운 통증이 훑고 지나갔다. 으윽 하고 가벼운 신음 소리를 냈지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물장구를 치며 노느라 바쁘고, 아내는 파라솔 그늘에서 커피를 마시며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아픈 손목을 가볍게 만져보고 혹시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확인했다. 특별히 심각한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시계방향으로 돌려보고 반대쪽으로도 돌려보니 손목의 회전 기능에는 이상이 없다. 앞으로 살짝 꺾고 뒤로 눕혀봐도 아까와 같은 아픔은 없다.


- 뭐지, 너무 무리해서 놀란 건가?


샤워를 마치고 등에 묻은 물기를 닦으려 할 때였다. 양손으로 수건 끝을 맞잡고 어깨 뒤로 빙 돌리는데 아까 찌릿했던 그 부위에 다시금 통증이 번졌다.


- 아, 이거 안 되겠는데... 제주도에 여행 와서 병원을 가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결국 촘촘하게 짜인 여행 일정 상 병원에 들르지 못했다. 일주일 내내 운전을 하고 배를 타고 목포항에 다다라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고된 가족 여행을 마무리했다. 그때 손목 통증의 정도를 떠올려 보면 왼손으로 핸들을 크게 꺾기 힘들었고, 앉은 자세에서 뒤로 손을 짚고 일어서기가 불가능했다. 그리고 활짝 열린 차 트렁크를 잡고, 힘껏 아래로 끌어당겨 닫기가 어려웠다.

집에 돌아와서도 이래저래 바쁜 일상에 치여 병원 내원을 어영부영 미루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회복된 듯하다. 한 달쯤 지나자 샤워 후 수건을 맞잡고 등의 물기도 닦을 수 있었고, 팔 굽혀 펴기도 천천히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가끔씩은 앉은 자세에서 왼손을 짚고 일어서기도 했다.

그 통증의 존재가 잊힐 때쯤 '똑똑' 문을 두드리며 나 여기 있소 하고 불현듯 찾아온 계기가 있었다. 하필이면 내가 철봉이란 요물에 빠져버린 것이다. 어려서부터 근력이 약한 탓에 턱걸이 한 개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철봉에도 오래 매달리기 힘들었다. 어릴 때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서 놀이터에서도 또래 친구들이 원숭이처럼 철봉에 매달리고, 구름사다리를 두 칸씩 잡고 오갈때도 멍하니 구경만 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학창 시절에도 군대에서도 그 이후에도 철봉과는 인연이 닿지 않아 멀리 했다. 그러다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에서야 갑자기 뭔 바람이 불었는지 턱걸이를 해야겠다는 욕심이 덜컥 생긴 것이다. 원인 제공을 한 범인은 바로 유튜브였다.

유튜브에서는 헬창이다 프로다 풀업 챔피언이다 저마다 화려한 타이틀을 걸고 한 손으로 턱걸이를 하고, 휠체어에 탄 채로 머슬업을 하고, 턱걸이를 기본 20개는 넘게 하는 괴물들이 날 손가락질하고 유혹한다.


- 남자로 태어났으면 이 정도 풀업은 가볍게 해야 하지 않겠어?

- 창피하게 턱걸이를 아직 한 개도 못 한다고...

- 한 달이면 기본 10개, 가뿐히 성공할 수 있어. 일단 시도해 보라고.


난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빠져 매일 철봉에 매달리는 연습을 시작했다. 시간 날 때마다 가까운 맨발공원에 들려 중간 높이 철봉에 매달렸다. 처음에는 최대한 오래 매달리는 연습을 했는데 점점 시간이 늘어나 1분까지 버틸 수 있었다.

어느 날 그립을 바꾸어 친업(손바닥이 얼굴을 바라보게 철봉을 잡는 방법)으로 턱걸이에 도전했는데 이때 왼 손목 바깥쪽을 타고 익숙한 통증이 도졌다. 정상적인 풀업 그립보다 친업 그립이 좀 더 당기기가 쉬운데도 통증 때문에 도저히 힘을 줄 수가 없었다. 결국 친업은 포기하고 풀업으로 철봉에 매달렸다. 친업으로 매달려 힘이 실릴 때 왼쪽 약지부터 손목 바깥쪽을 길게 가로지르는 선이 늘어나고 끊어질 듯한 불편함이 전해졌다.


- 제주도 여행 때 다쳤던 바로 그 느낌인데(뭔가 불길한데)... 병원에 가봐야 하나.


통증을 애써 무시하고 참으며 손바닥에 굳은살이 배겼다가 다시 떨어지길 수차례, 드디어 가장 높은 철봉에서 턱걸이 한 개를 성공했다. 점프하여 그 반동으로 끌어당기긴 했지만 예전에는 매달리기도 벅차서 감히 당길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 때의 감격은 아마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 인류가 원숭이에서 진화했음을 증명하듯이 하루 종일 높은 곳에 매달리고 싶고, 자는 중에도 턱걸이를 시도하는 꿈을 꾸게 하는 그런 일종의 중독 증상. 이러다가 집 베란다에 근사한 철봉을 들여야 하지 않을까 심각한 고민을 하는 중에 다시 찾아온 왼쪽 손목 통증이 철봉에 대한 금단 증상을 가라앉혔다.

이번엔 왼쪽 어깨도 함께 속을 썩이기 시작했다. 철봉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면서 온몸에 힘을 뺀 상태로 매달리는 데드행 자세를 취하면 어깨 깊숙이 끊어질 듯 통증이 스며들었다. 심한 날에는 목 뒤쪽까지 전기 오르듯이 근육이 굳으며 극심한 두통으로 퍼졌다. 가뜩이나 유연함과는 담을 쌓은 뻣뻣한 내 몸에 무리하게 힘을 주어 근육이 경직되는 담이 오자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사지를 하고, 스트레칭을 하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심지어 가만히 누워만 있는데도 근육은 딱딱한 돌처럼 굳어져 주위 신경을 압박했다. 덕분에 담이 도진 날은 머리맡에 눕기만 해도 편두통이 도져 두세 번씩 잠을 깨기 일쑤였다. 그런 밤은 차라리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잠을 청하는 것이 편했다.

수소문해 가까운 정형외과를 찾아 엑스레이를 찍고 경험 많은 의사의 진단을 받은 결과,


- 다행히 손목을 구성하는 뼈들은 이상이 없다.(골절, 탈구는 아니다)

- 두 가지 가능성 중 하나는 TFCC(삼각 섬유연골)라는 손목뼈들 사이에 완충 작용을 하는 세모 모양의 연골이 있다. 이 부분이 손상되면 손목 바깥쪽이 아플 수 있는데 경험 상 운동선수, 노동자와 같이 강도 높은 충격을 지속적으로 받는 직업군에서 해당 증상이 발생한다. TFCC 가 찢어지면 해당 부위가 붓고, 당신처럼 손목을 돌리거나 앞뒤로 움직이는 동작은 꿈도 못 꿀 것이다. TFCC는 엑스레이로는 정확히 진단이 안되고, 큰 병원에서 MRI를 찍어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

- 마지막으로 인대 손상. 뼈와 뼈를 연결하는 인대나 건이 미세하게 찢어져 염증이 발생하면 통증이 발생한다. 당신 증상은 이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다.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진통제가 포함된 약을 처방받았다. TFCC에 대한 다양한 사례, 연구보고서 등을 읽어보니 격투기를 하다 손목이 크게 꺾여 골절되면서 연골이 함께 파열되는 경우, 벤치 프레스를 하다 손목이 버티지 못할 정도의 고중량을 시도하다 터지는 경우, 골프 연습 중에 땅바닥에 클럽을 휘둘러 충격을 받은 경우, 노동 현장에서 반복적인 강한 충격이 손목에 가해져 연골의 내구성이 견뎌내지 못한 경우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평생 막일 또는 택배 물류 현장은 가까이하지도 않고, 농구는 10년 전에 그만두었고, 최근에 철봉과 등산보다 격렬한 운동은 시도해 본 적이 없기에 TFCC는 내 통증의 원인이 아닌 듯했다. 향후 통증이 지속적으로 심해질 경우에 한해 다른 병원에서 MRI 진단을 받기로 결정했다.


- 그렇다면 손목 인대가 문제라는 건데, 대체 어떻게 회복해야 되지?


아이들을 돌봐야 하고, 코로나 때문에 병원에 자주 갈 수 없는 상황이라 집에서 치료하고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1. 철봉이나 팔 굽혀 펴기 등 무리한 운동은 당분간 자제한다.

2. 운전이나 운동은 최대한 자제하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면 손목 보호대를 착용한다. 청소, 설거지 등 집안일은 다치지 않도록 무리한 동작은 삼가고 천천히 한다.

3. 자기 전에는 냉(icing) 마사지를 하여 통증을 감소시키고, 아침에는 따뜻한 물로 마사지를 하여 경직된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준다.

4. 무조건 손목과 어깨를 쉬게 해 준다. 인대는 혈액이 잘 통하지 않으므로 회복이 느리다.

그동안 몸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무리했다는 증거이므로 충분한 휴식 시간을 주어야 한다.


철봉을 바라만 봐야 한다는 것은 턱걸이 실력이 정체되고 하락할 수 있다는 것, 쇠기둥에 매달릴 때마다 솟구치는 희열을 더 이상 맛볼 수 없다는 의미였다. ㄷ 자로 땅에 단단히 박힌 철봉을 지나칠 때마다 달려가 매달리고 싶은 욕망이 넘쳤지만, 어차피 평생 해야 할 운동이니 오늘은 참자 참자 다독이며 뒤돌아 서곤 했다.


일주일 정도 휴식을 취하자 통증은 다소 줄어들었고 보호대를 착용하면 턱걸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한두 번씩 시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개 이상 시도하면 여지없이 손목이나 어깨에 당기는 느낌이 전해져 데드행은 꿈도 못 꾸고 내려오기 일쑤였다.

이 시점에서 진작에 품었어야 할 중요한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졌다.


- 왜 오른쪽 손목과 어깨는 멀쩡한 거지. 똑같은 운동을 하고 동일한 힘을 가하는데? 어쩌면 왼손 통증으로 더 많은 힘이 반대쪽에 가해질 텐데.. 지금까지 아픈 적이 없잖아?


난 어릴 적부터 야구공을 던지거나, 농구공으로 슛을 던지는 등 힘이 들어가는 운동을 할 때는 왼손을 사용했다. 반면에 젓가락질을 하거나, 뭔가를 쓰기 위해 펜을 잡는 등 정밀한 작업을 할 때는 오른손을 사용하곤 했다.

자연스레 왼손의 전반적인 근력이 오른손보다 셀 수밖에 없어서 팔씨름을 할 때는 상대에게 왼손을 먼저 내미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마흔 넘어 철봉에 매달려보니 반대로 왼팔이 오른팔에 비해 힘을 쓰기가 어려웠고, 고질적인 통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빈번했다.


- 왜 그런 거지? 어려서는 왼손을 즐겨 사용했고 지금까지 문제가 없었는데 말이야. 어째서 같은 운동을 하고, 동일한 가동 범위에서 근력을 사용하는데 몸 한쪽이 못 버티겠다고 비명을 지르는 걸까?


몸은 정직하다. 몸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몸은 그 사람이 평생을 버텨온 생업과 오랜 시간 누적된 습관을 반영한다. 어느 날, 고민 끝에 손목 통증 때문에 작년부터 고생 중이라 말하자 넌지시 건네는 아내의 말


- 당신 스마트폰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거 아냐? 작년 초에 새 스마트폰으로 바꿨잖아.

종일 그걸 들여다보니 손목이 못 살겠다 그러는 거 아닐까?

- 스마트폰?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터치와 스크롤 등 복잡한 동작을 왼손이 주로 담당한다는 걸 깨달았다. 작년 초에 7년 동안 사용한 아이폰 4S가 액정이 파손되어 폐기 처분하고, 더 크고 무거운 스마트폰으로 바꿨으니 왼손에 더 많은 부하가 걸렸겠지.


- 그래, 날 괴롭힌 통증의 원인은 의외로 이 놈 때문일지도 몰라. 가장 가까이 지내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 벽돌 때문일지도...


폰을 다룰 때 양손이 아닌 한 손으로만 다루는 경우가 많아 왼손으로 폰을 잡고, 엄지 손가락으로 먼 대각선 방향, 액정 바깥쪽까지 터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손목 바깥쪽 근육이 팽팽히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장시간 같은 자세로 반복 사용하면 같은 쪽 어깨와 목까지도 부담이 전해지겠지. 물론 정확한 전문의의 진단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쌓인 생활 습관을 돌이켜보고, 폰을 바꾼 시점을 고려하면 아내의 조언이 옳다는 감이 왔다.


- 그동안 손목 통증을 해소하겠다고 즐기던 운동을 쉬고, 마사지를 하고, 병원을 다녀도 차도가 없는 건 결국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하는 좋지 않은 습관을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 아닐까?


스마트폰 사용 시 왼손 엄지를 당겨 멀리 터치할 때 손목 바깥쪽에 부하가 걸린다

최신 폰으로 바꾸고서 호기심에 새로운 앱도 설치하고, 그동안 사양이 부족해 즐기지 못한 게임도 접하면서 이용 시간이 배 이상 늘었다. 20년 넘게 컴퓨터 키보드와 마우스를 가까이하고, 휴대용 게임기, 폰과 태블릿을 다루면서 몸에 누적된 스트레스는 상당했을 것이다. 그러다 작년 제주도 여행 막바지, 마흔 넘은 나이에 체력이 바닥을 칠 때 왼쪽 손목이 이제 더 이상 못 버티겠다 외치며 파업을 선언해 버린 것이다.


- 불쌍한 내 몸아, 무심한 주인 만나 그동안 고생 많았다. 더 이상 못 버티겠다는 네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지 않고 함부로 대했으니 이런 고통을 겪는 건 당연하겠지. 이제부터라도 널 아껴주고 소중히 대할게.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좋아하는 운동을 평생토록 하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나름대로 원칙을 정해 지키기로 했다.


1. 스마트폰, 태블릿 등 무거운 디지털 기기 사용을 최대한 줄인다.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할 경우 거치대에 놓고 사용하여 부담을 최소화한다.

2. 손목과 어깨를 무리하게 돌리거나 힘을 주는 등 위험한 동작을 자제한다.

3. 통증이 없어지고 더 이상 재발하지 않을 때까지 운전이나 운동을 할 때 보호대를 착용한다.

4. 샤워할 때 또는 틈틈이 따뜻한 물로 마사지를 한다.

5. 마지막으로 혹사당한 몸을 쉬게 한다.


위에서 정한 5가지 원칙을 최대한 지키며 생활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아직 손목과 어깨가 완전치는 않지만 오랜 기간 무거운 디지털 기기를 버티며 과부하가 걸린 만큼, 몸에 부담을 주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면 점차 호전될 것이라 믿는다.

최근 악명 높은 요로결석에 걸려 응급실 신세를 지고 수술대에 오르면서 사람의 몸은 세심하게 다루지 않으면 후에 크나 큰 재앙으로 다가와 잔인하게 복수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상시 습관을 주의 깊게, 예민하게 들여다보고 잘못된 점을 바꾸지 않는다면 몸의 통증은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악화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병원에서도 어찌할 수 없는, 평생토록 우리를 괴롭히는 고질병이 될 수도 있다.


몸이 우리에게 보내는 소리에 항상 귀 기울이고, 그에 따라 잘못된 생활 습관을 바꿔 나간다면 건강한 몸을 최대한 유지하며 늙어가는 것이 어려운 일만은 아니리라.

더불어 자신을 바라보며 같이 살아가는 아내의 혜안을 귀 담아 듣는다면 백년해로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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