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성당일기

예비 신자 교리 교육 10회차

예수님의 죽음

by 매일의 기분


(천주교 교리에 대한 내용이 있으니, 종교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은 주의)


지난 주 미사에 갔는데 새삼 미사의 순서가 익숙해졌고, 기도문의 내용이 입에 붙어서 깜짝 놀랐다. 예비 신자 교리 교육을 시작하고 10번 정도가 지났는데, 따로 외우거나 하지 않고도 익숙해지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물론 아직 5개월 여의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자만하긴 이르지만 무언가 뿌듯함이 있었다.



예비 신자가 되어 주변에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하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그럼 신의 존재를 믿으세요?'이다. 무신론자였다가 종교인이 된 것과, 자신은 신을 믿지 않는데 신을 믿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기해보이나보다.

여기에 대해서는 전에도 쓴 것 같은데, 신을 믿게 되면 이성이나 감성이 아닌 '신성'이라고 할 법한 감각이 새롭게 생기는 기분이 든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신이 있다는 것을 배워서 알게 된다거나(이성), 금발의 수염을 멋지게 기른 남성이 우리를 창조했다고 믿게 되는 것(감성)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신앙의 신비'를 깨닫는 어떠한 감각이 새로이 생겨나는 기분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설명하기 난처하기 때문에 그냥 '막연하게 믿죠~'하고 대답하고 만다.(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런 진지한 답변을 원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진지한 대화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최대한 전달하려고 한다.)



사실 새롭게 신앙 생활을 시작했다고 말하면 다분히 악의적인 의도가 보이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럼 창조론을 믿으세요?', '난 자기가 다니는 건 상관없는데, 남한테 믿으라고 하는 거 보면 진짜 싫더라.', '왜 종교를 강요해요?' 같은 말들.

만약 '저 이번 주부터 주말에 그림 배우러 다녀요'라고 말한다면 보통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그림에 대해 묻거나, 어떻게 다니게 되었는지, 그곳에서 배우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을 것이다. 편견 없는 관심과 대화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어쩐지 종교는 그렇지 않다.(나도 비신자일 때는 그랬지만.)



나는 이러한 것들이 종교인들에게 내려진 어떠한 '숙제'라고 생각한다. 비신자들이 종교에 대해 편견을 갖거나 색안경을 끼지 못하게 하는 것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다른 사람에게 종교를 강요 혹은 강권하지 않아야 하며, 종교에 대한 질문을 들었을 때 성실하고 진솔하게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자신의 종교에 대한 교리 공부를 꾸준히 해야 할 것이고.

물론 그 이전에 종교인으로서 바르고 정직한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긍정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예수님의 삶이 아니라 신도들의 삶과 생활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다.


예수님의 수난


예고대로 한동안 예수님의 삶과 죽음, 부활에 대해 배우고 있다. 이번 시간은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이야기였다.

예수님이 본격적인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았다. 그건 추후에 예수님을 죽게 한 이스라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로마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의 독립을 기다리고 바랐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정치적 지도자가 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유대교에서 정한 율법과 다른 가르침을 전파하고 다니셨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눈에 예수님이 밉보이기 시작했고, 이는 예수님을 죽음으로 향하게 한다.


예수님 죽음의 외적인 요인


① 율법 해석의 차이

기존 유대교의 율법은 지나친 형식주의에 빠져 사람들을 얽메이게 했다. 율법이 가진 문자 그 자체, 수단 그 자체에만 집착해 그것을 지키는 일에만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율법이 말하는 본질에 대해 집중하라고 가르치셨고, 그렇게 행동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② 종교 관념의 차이

유대인들은 신 야훼를 엄격히 따랐다.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도 못하고, 형상조차 함부로 만들지 못하게 했다.(성상숭배금지) 하지만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신과 인간을 가깝게 만들고자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야훼에 대한 모독으로 생각했다.


③ 메시아관의 차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생각하려고 했다. 예수님도 자신을 메시아로 자처하긴 했지만, 정치적 지도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예수님은 죄인, 병자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가까이 지냈는데, 당시에는 죄인, 병자들을 신의 저주를 받은 사람들로 생각했다. 즉, 예수님을 신이 내친 자들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인들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맛지 않게 행동하는 가짜 메시아를 없애자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예수님


예수님은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들 손에 의해 죽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제자들에게도 꾸준히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하곤 했는데, 제자들은 그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돌아가시기 전날, 열두 명의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지게 되는데, 예수님은 여기서 미사 예식을 제정하신다. 기존 유대교의 제사는 개인 혹은 공동체가 죄를 지었을 때, 그 죄의 용서를 바라며 소·양·염소 등을 제물로 바치는 일이었다.


예수님은 이러한 제사를 새롭게 바꾸었는데, 그 핵심은 제물이 '예수님 자신'이 된다는 점에 있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희생하여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고 그들에게 구원의 약속을 하신다. 사람들은 성체와 성혈을 받아들임으로써 이 계약을 다시금 확인한다. 이것이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미사가 된다.


십자가 죽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며, 십자가가 기독교의큰 상징이 된 것은 비신자들도 알고 있는 유명한 사실이다. 천주교에서도 물론 중요한 상징이며, 모든 성당의 앞에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의 상이 놓여 있다. 이 십자가 죽음의 의미는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① 인류 구원을 위한 십자가
인류 구원 약속의 징표 = 예수님의 죽음

② 하느님과 인간과의 화해를 위한 제물
단절되어 있던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잇는 중재자로서의 예수님의 존재/죽음 상징

③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의 증표
참사랑은 내 전부를 주는 것을 의미 /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하는 예수님의 참사랑 실현을 상징

④ 십자가와 고통의 의의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는 상징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수업은 여기서 끝났고, 다음 주에는 부활에 대해 배울 예정이다.


나눔 시간에는 어쩐지 결석자가 많아 단 두명(총 6명)만이 참석해 금세 끝났다. 10월 중에 서울에 있는 성지를 순례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절두산 / 당고개(용산) / 새남터에 방문할 예정이라고 한다.

교리를 배우면 배울수록, 교리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만 다른 사람들(비신자)에게 천주교의 정수를 제대로 알려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교리 수업을 들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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