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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일의 기분 Nov 13. 2019

주간 ㄱㄷㅎ 5-4

20.

회사에서 저녁으로 콩나물 국밥을 줬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콩나물 국밥을 먹는 심리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단백질(육류)로 된 건더기도 하나 없이 콩나물만 들어있는 국을(오징어가 조금 있는 경우도 있지만) 왜 돈주고 사먹는지 이해를 못했었다. 같은 돈이라면 뼈다귀 해장국 쪽이 훨씬 맛있는데...

그러다 20대 중반 즈음이 될 때까지 몇 번쯤 콩나물 국밥을 먹을 기회가 생겼고, 그러다보니 나도 자연스레 콩나물 국밥을 좋아하는 한 사람이 되었다. 그 나름의 심심한 매력에 빠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 좋아함의 정도라는 것은 다소 애매하긴 했다. 그 전까지가 '굳이 안 먹는다'였다면 바뀐 마음은 '가끔은 생각난다' 정도였다고 할까. 

그래도 '이때만큼은 꼭 콩나물국밥' 이라는 기준이 생기긴 했는데, 그건 'PC방에서 밤을 새서 게임을 한 다음 날 아침'이었다. 그런 날 만큼은 꼭 콩나물국밥이 좋았다. 적당히 피곤하고 알 수 없이 각성된 느낌이 드는 그 순간만큼은, 위에 부담이 안 가는 재료들로 만든 담백, 깔끔, 든든한 콩나물 국밥이 딱이었다. 친구의 밥을 사도 큰 부담이 없는 저렴한 값까지도.

21. 

요즘 회사 일 말고도 이리 저리 벌여 놓은 일들이 많은데, 더 바빠졌음에도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오히려 확 줄어드는 느낌이 많이 든다. 예전에는 회사일이 내 삶에 차지하는 비중이 10중 5 정도(50%)로 무척 컸다면, 이제는 회사일의 비중은 5로 여전하나 내 삶의 총량이 20정도로 늘어나 그 비율이 줄어들었다(25%)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만큼 회사에서 '막연하게 잘' 해야된다는 부담을 느끼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일을 하고 사람들을 대하다보니 조금 편해진 것이다. 모든 것에서 너무 절박한 것보다는 조금 힘을 빼고 거리를 두는 편이 그것을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요즘 회사일에 적당히 거리를 둘 수 있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다.

22.

친한 후배(군대 시절 맞후임)가 얼마 전 내가 사는 곳 근처에 음식점(배달 참치 전문점)을 열었는데, 오늘 팔아주려고 방문했다. 군대에서부터 친하게 잘 지낸 후배였는데, 전역 후에도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다보니 서로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관계가 되어 참 좋다.

별다른 계산이나 의도 없이 오랜 시간을 함께 하다보니 자연스레 친하게 지냈는데, 후배가 공인중개사 일을 하게 되면서 개인적으로 이런 저런 도움을 받을 일이 많아졌었다. 집을 구한다던가) 그래서 그 고마운 마음을 이렇게 조금씩 갚아나가고 있다. 군대에 다녀오며 얻게 된 몇 안되는 좋은 점들 중 하나는 역시 인맥 혹은 인연이 아닐까. 힘든 시절을 함께 견뎌냈기 때문에 더욱 견고할 수 있는 것 같다.

23.

이번 주 주말에는 나도, 여자친구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어서 오랜만에 평일 저녁에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모 백화점에 가서 식당가에서 밥을 먹었고, 먹고 나서는 백화점 위아래를 돌아다니며 이런 저런 것들을 구경했다. 구경을 마치곤 요즘 핫한 흑당 밀크티도 한 잔 사서 나누어 마셨다.

(서울에 살다가 지방에 갔을 때 불편한 점은 거의 모든 것이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불편한 것은 '대형 몰'이 없는 게 아닐까 싶다는 생각을 했다.)

24. 

원래 평소에 약속이 많은 타입은 아닌데, 이번 주는 어쩌다보니 수목금 연속으로 약속을 잡게 되었다. 오늘은 얼마 전 이직한 친구를 만나러 갔다. 

친구는 이직을 하며 대우를 좋게 받아 나름대로 연봉을 많이 올리며 회사를 옮기게 되었는데, 막상 가보니 회사 문화가 자신의 생각과는 많이 달라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제 회사를 옮긴 지 한 달 정도 되었는데, 이런 저런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했다.

친구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부조리한 상황 그 자체보다, 그 상황이 앞으로도 몇 번이고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인 듯했다. 예를 들어 주말에 등산을 간다고 한다면, 그것이 꼭 한 번으로 끝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게 문제인 것이다. 회사 생활을 하며 단 한 번의 주말 등산을 해야 한다고 하면(물론 단 한번도 싫기는 하겠지만) 눈 딱 감고 한 번쯤 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 한 번의 등산은 그 다음 번, 또 그 다음 번의 주말 등산을 예고하게 된다. 친구가 힘들어하는 부분은 이러한 '부조리가 반복되는 상황'에 있었다.

그럼에도 첫 월급날 전 회사 대비 대폭 오른 급여를 보니 많은 스트레스가 해소되었다고는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나도 맘 편히 친구에게 맛있는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25.

인천 연수구립 공공도서관의 주관으로 열린 '초록 책 축제'에 독립출판물 셀러로 초대를 받게 되었다. 아침 11시부터 행사가 시작되었는데, 편도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먼 곳(송도 해돋이공원)에 있었다. (지하철 환승 2번) 그래서 주말이었음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 캐리어를 바리바리 싸들고 인천으로 향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책은 한 권도 팔지 못했다. 유동인구가 적지는 않았는데, 대부분 가족단위 손님이다보니 독립출판물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니, 독립출판물 뿐만 아니라 플리마켓에서 팔고 있는 대부분의 물건에 관심이 없었다. (내 좌우의 셀러들도 거의 팔지 못함) 행사는 다섯시까지였는데 할 게 없어서 지루하게 앉아 있다가 결국 전자책을 한 권 사서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었다. 그랬는데도 고작 세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사는 사람은 커녕 구경하는 사람조차 없어서 더이상 기다리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되어, 자리를 접고 일어났다. 


사실 셀러로 참여한 게 처음은 아니었기에 한 권의 책도 팔지 못한 것에 실망하지는 않았지만, 독립출판물이라는 매체 자체가 가진 힘이 크지 않다는 점에는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내가 만든 책이라는 콘텐츠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부족하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떠나 이 독립출판이라는 시장 자체가 너무 작다는 점에 많은 아쉬움을 느꼈다. 앞으로도 독립출판물 창작자로 계속 활동을 이어나가고 싶은데, 과연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이 무엇일지 조금 걱정이 된다.



26.

사촌 동생(이모의 아들)이 서울에서 결혼을 한다고 하여, 축의금을 받아주기로 했다. 식장은 집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야 되는 곳이었는데, 좀 일찍 와달라고 해서 시작(11시 반) 1시간 전 정도에 도착했다. (덕분에 이번 주에는 늦잠을 한 번도 못 잠)


이모를 마지막으로 본 게 아마 2014년이었던 것 같고, 결혼하는 사촌 동생을 마지막으로 본 건 아마 2008년(...) 이었던 것 같다. 가까운 친척이지만 나도 집 밖에 나와서 사느라 친척들을 볼 일이 적었고, 설상가상 사촌 동생은 직업 군인이다보니 서로 바빠 마주칠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정말 놀랍게도 이모는 처음에 나를 잘 못 알아봤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축의금을 받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 하나가 나타났다. 대학 시절 함께 아르바이트를 했던 아주 친한 후배였다. 깜짝 놀라 그 친구의 이름을 불렀더니 그 친구도 놀라는 표정이었다. 알고 보니 사촌 동생과 중학교 동창이었다. 예전에 우연히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서로 그것을 잊고 있다가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게 된 것이었다. 재밌는 건 오래동안 보지 않은 사촌 동생보다, 사촌 동생의 친구인 후배와 자주 연락도 하고 함께 친하게 지낸 시간이 더 많아 그 후배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 외 친척들과도 오랜만에 만나서 서로 어떻게 사는지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결혼식이라는 행사 자체에 대해 '허례허식이며 의미보다는 무의미가 많다'고 생각해왔는데, 이런 기회에나마 서로 얼굴을 보고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점은 좋게 느껴졌다. (물론 오랜만에 친척들을 보게 되며 받게 되는 스트레스가 없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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