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돌이
보통 낮에 하는 레스토랑 알바가 끝나고 집에 와서 좀 자다가 9시 경에 일어나서 씻고 준비를 마친 뒤 편의점에 출근했다. 10시가 좀 되기 전에 도착해 이전 근무자와 시재가 맞는지 확인한 뒤 교대를 했다.
교대를 하고는 바로 라디오를 켰다. 당시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카운터에서 딱히 할 게 없어서 라디오를 듣곤 했다. '스윗 소로우의 텐텐클럽'을 매일같이 들었는데, 정말 재밌었다. 그 전까진 라디오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편의점 알바를 하던 두 달여의 시간 동안 정말 재미있게 들었다.
'텐텐클럽'이 끝나고 나서 하는 라디오들은 재미가 없어서 듣지 않았다. 대신 매일같이 아이팟 터치에 영화를 3~4편 넣어 와서 그것을 봤다. 처음에는 책을 보려고 했는데, 꾸준히 들어오는 손님들을 맞다 보면 다시 책에 집중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는 잠시 흐름이 끊겨도 금세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보는 데 특별히 불편함이 없어 매일 2~3편의 영화를 봤다.
그때가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영화를 많이 본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2달간의 편의점 알바를 끝내고 나서 그동안 본 영화를 세어 봤더니 60편이 넘었었다. 일주일에 4일을 일했으니(월~목) 하루에 평균 2편 정도를 본 셈이었다.
그 뒤로 영화애호가인 척 할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그때 몰아본 영화들 덕분이었던 것 같다. 야간 알바였지만 거의 졸지도 않고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영화 덕분이었던 것 같다.
가장 바쁜 2~3시가 지나고 나면, 이젠 지루함과의 싸움이었다. 영화를 보며 시간을 잘 때우긴 했지만 3시가 넘어가면 아침 6~7시 정도까지는 한 시간에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을 정도로 한적해졌다.
배가 고프면 유통기한이 넘은 삼각 김밥과 우유같은 것을 먹었다. 5~6시쯤 되면 해가 떴는데, 해 뜨는 것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켰다.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다보니 늘 정신이 몽롱했다. 마치 항상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일했던 편의점은 유흥가가 많았던 곳이었기 때문에 10시가 넘어도 손님이 많이 왔다. 특히 10시~2시 정도까지가 가장 바빴다. 주 손님은 술을 먹고 나온 아저씨들과 술집에서 일하는 웨이터, 여성분들이었다.
술을 먹고 나온 아저씨들은 대체로 불쾌했다. 돈을 받기 위해 손을 내밀어도, 내 손 위에 돈을 놓지 않고 그 옆 카운터에 돈을 던지기 일쑤였다. 술에 취해 흥청거리며, 반말을 하기 일쑤였고 화를 내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대하는 데에는 늘 신경이 예민해졌었다.
어느 날은 카운터에서 술에 취한 아저씨들이 하는 얘기를 들을 일이 있었는데, 그들은 해외 유학 시절과 회사 다니는 이야기를 했다. 대충 듣기에도 그들은 소위 말하는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었고, 내가 엄두도 내지 못할 좋은 회사에 다녔다. 하지만 그들의 인성과 술버릇은 그들의 직장과 지식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그 모습들을 보고 나니, 나이를 먹는다 해도 유흥업소에 다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술집에서 일하는 웨이터(전부 남자)들은 내 또래로 보였다. 그들은 대체로 담배를 바꾸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 번씩 편의점에 들렀다. 그들이 일하는 술집에 온 손님들이 자신이 피는 담배가 아니라며 바꿔 오게 시키는 것 같았다. 때때로 마이너한 취향의 음료수를 사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것 또한 손님들이 시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웨이터들의 태도는 늘 친절했다. 술집에서 일하며 취객들의 비위를 맞추는 일은 쉽지 않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 텐데 그들은 그런 짜증을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표출하지 않았다. 술집에서 일하며 돈을 번다는 편견을 갖고 보기엔, 그들의 인성은 너무 좋았다.
한 번은 편의점에 주먹 만한 나방이 들어와서 어떡하나(벌레를 무서워 함) 고민하고 있는데, 웨이터들 중 한 친구가 그 나방을 무심하게 잡아 준 일도 있었다. 웨이터들에게 불쾌한 감정을 느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대체로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그렇지만 그 분들은 나를 '삼촌'이라고 많이 불렀다. 그들의 태도는 웨이터들과는 또 달랐다.
웨이터들이 미묘하게 붙임성이 있었던 반면, 그들은 아주 사무적이었다.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거나, 말하고(주로 담배) 돈을 지불하고 가져갔다. 다른 말을 걸거나 하는 경우는 없었다. 손님으로서는 최고였다.
일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보도방'이란 것을 목격했을 때였다. '보도방'은 '노래방 도우미'들을 공급해주는 불법 유흥업(?)을 말한다. 그들은 보통 차에 타고 있다가 연락이 오는 곳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도움'을 주었다.
편의점 앞에는 밴이 늘 주차되어 있고, 그 안에는 젊은 여자들이 타 있었다. 운전하는 건달(로 보이는) 형님에게 전화가 오면 여자들을 노래방으로 데려다주곤 했는데, 처음 그 모습을 목격했을 때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었다.
세상에 이러한 종류의 유흥 문화가 있다는 것은 소문으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것을 목격하는 것은 또 다른 수준의 놀라움이었기 때문이다. 커다란 밴 안에 가득 차 있던 여자들의 모습은 너무도 기이했다.
이렇게 유흥 업소들이 일하던 편의점 주변에 너무 많아서 처음에는 무슨 사고라도 당할까 겁이 났었지만, 별다른 일 없이 두 달간의 알바를 마무리하고 방학은 끝났다.
원래 방학때만 하기로 해서 사장님께 이제 개강한다고 하니, 사장님이 시급을 올려 줄테니 학기 중에도 계속 할 수 있냐고 물어봤었다. 사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밤에 일한다는 거 자체가 너무 힘들어 도무지 계속 한다고 할 수 없었다. 죄송하지만 학업에 열중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 월급을 받고 죽은 듯 편히 잠을 잤다. 이젠 안개 속을 나올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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