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만들며

당시엔 몰랐던 커피의 맛

by 매일의 기분



대학을 졸업하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한동안 여유롭게 쉬던 시절이 있었다. 여유가 있다보니 전부터 따고 싶던 조리 관련 자격증 시험을 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한식이나 양식은 상황이 여의치 않아 포기하게 되었다. 그래서 차선으로 선택한 게 바리스타 자격증(커피조리사)이었다.

바리스타 자격증은 한식이나 양식 조리사와는 달리 국가 자격이 아닌 민간 자격으로, 큰 권위(의미)는 없는 자격증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흥미와 매력을 느껴 도전해보게 되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보통 협회에서 운영하는 학원이나 대학의 평생교육원을 다녀야한다. 민간 자격은 철저히 그 단체의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에, 별다른 교육을 받지 않고는 자격증을 잘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주 1회씩 수업이 있는 대학교 평생 교육원에서 한 학기(3달)동안 수업을 듣게 되었다. 수업료와 재료비는 약 30~40만원 정도로, 그냥 돈과 자격증을 바꾼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어쨌든 그렇게 여유가 있을 때 자격증은 쉽게 딸 수 있었지만, 실제로 커피를 만들고 에스프레소 머신을 다루는 것을 제대로 배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커피를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내가 일했던 곳은 후발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였는데, 당시 마구잡이식으로 체인점을 늘려 나가던 업체 중 하나였다. 전에 요식업(패스트푸드, 레스토랑) 쪽에서 일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아르바이트는 단번에 채용이 되어 시작하게 되었다.



커피숍 아르바이트 또한 요식업 아르바이트계에서 가장 쉬운 편에 속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우선은 식재료가 대부분 신선식품이 아닌 가공품으로, 재료의 저장과 취급이 쉬웠다. 그 말은 일이 쉽고 깨끗하다는 의미였다. 커피를 조리하는 과정도 쉬웠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좀만 다룰 줄 알면 커피를 만드는 일은 간단했다.

다만 프랜차이즈 특유의 끝을 알 수 없는 다양한 메뉴의 제조법을 외우는 게 조금 힘들었다. 정확한 용량과 정량을 외워 시험을 봐야했는데, 나도 정확히 외우기 위해 일을 하던 중이나 일이 끝나고 틈틈히 메뉴얼을 외웠다.

메뉴얼 테스트를 마치자 본격적으로 커피와 음료를 제조하는 일을 배웠다. 일 자체는 어렵지 않고 간단해 금세 배울 수 있었다. 조리를 하는 것은 특유의 리듬을 익히는 일이 먼저였다. 자연스럽게 원래 있던 직원들과 합을 맞춰가며 군무를 추듯 녹아 들어야 했다. 사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누구나 꺼리는 일을 먼저 나서서 한다면 쉽게 녹아들 수 있었다. 나는 그런 부분에서 빼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쉽게 일을 배울 수 있었다.

580648_319122804826637_1642384655_n.jpg 당시 만들어 먹었던 캬라멜 마끼아또


사이드 메뉴(빵 및 베이킹)를 만드는 일은 전에 했던 레스토랑 일에 비하면 장난 수준이었기 때문에 더 빨리 배울 수 있었다. 확실히 요식업 쪽은 하나의 분야에서 1~2년 정도 실력만 쌓는다면 다른 분야에 가서도 금세 익숙해질 수 있는 분위기가 있다. 나도 전에 일했던 경험들로 어렵지 않게 일을 배울 수 있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내가 당시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쭉 커피를 좋아하지 않아 마시지 않았었는데, 카페에서 7~8개월 동안 일을 하면서도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았다. 그 뒤로 취직을 하고 일을 하게 되면서 커피를 마시게 되었는데, 그렇게 마시다보니 나름의 맛도 알게 되었는데 카페에서 일하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 위해 준비하던 당시에 그 맛을 알았더라면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카페에서의 일했던 경험은 그 뒤로 카페에 가서 메뉴를 시킬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실 커피 전문점의 메뉴들은 무척 다양해 보이지만 굵은 줄기로 보면 비슷한 면이 많기 때문이었다.

다만 슬픈 것은 진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커피 매니아들은 다양한 커피를 직접 사먹어봐서 그 맛과 차이를 알게 되지만, 우리와 같은 가난뱅이들은 직접 일하며 다양한 커피를 먹어봐서 그 맛과 차이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결과야 비슷하지만, 과정이 천지차이라는 것은 조금 슬프다.



어쨌건 당시에 마감조로 일하며 일이 끝난 1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집에 혼자 들어가던 적막한 도로는 아직도 마음 속 평화의 이미지로 자리잡고 있다.

follow.jpg


:: contact _ napbock@naver.com

:: blog _ blog.naver.com/napbock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탈리아 사람 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