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2장 6절 ~ 8절을 시로 창작
베드로후서 2장 6절 ~ 8절
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소돔의 성문 앞에서>
성문 앞에 앉아
상념에 젖어드네
소돔..
부와 향락이 넘실거리고
탐욕과 권모술수가 소용돌이치는,
부패와 타락이 극에 달한 도시..
그 도시 중심가에
화려한 저택을 짓고
수많은 종을 부리며
왕도 부러워할 권세를 휘두르지만
내 마음은
텅 비어있구나.
정처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도는구나.
처음 소돔에 입성했을 때
나는 의기양양했다네.
삼촌 아브람이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며
내게 거처를 먼저 고르라 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소돔을 택했던
내 결정이 옳았음을
당시 나는 굳게 믿고 있었다네.
온 천지에 물이 풍부했고
땅은 비옥했으며 물자는 넘쳐났고
도시는 나날이 번창했지.
여기다.
이곳에 자리를 잡고
해가 하늘 높이 치솟듯
휘황찬란하게 번영하는
도시의 위세에 힘입어
내 가문을 일으키리라..
굳게 다짐했다네.
그러나
소돔의 교활하고 탐욕스러운 주민들에게
나는
쉽게 속이고 이용할 수 있는
순진한 이방인이었을 뿐
결코 그들의 호적수가 되지 못했지.
그렇게 철저히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기를 여러 번
소돔의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전쟁이 일어났다네.
소돔 왕의 연합군을 쳐부순
시날 왕의 군대가 소돔을 습격했지.
성벽이 무너지고
시가지 곳곳에 불길이 치솟았으며
적들은 거침없이 도시를 노략했지.
나와 내 가족들은 포로가 되어
절망 속에서 시날 왕국으로 끌려가고 있었다네.
그때
삼촌 아브람이 나타났지
삼촌이 거느린 수하들은 많지 않았지만
믿기지 않을 기백과 투지로
시날 왕의 연합군을 단숨에 깨트렸다네.
소돔을 되찾은 왕은
삼촌에게 큰 보상을 약속했지만
삼촌은 거절했지.
왕은 삼촌 대신 내게
거대한 부와 높은 지위를 하사했다네.
소돔 왕이 준 자산을 바탕으로
나는 소돔에서 승승장구했다네.
소돔에서 배운 방식대로
때론 비열하게, 때론 비굴함을 감수하며
때때로 잔혹하게
나를 멸시하고 짓밟았던 경쟁자들을
철저하게 진멸하며
나는 소돔의 정점에 올라섰다네.
그토록 갈망하던
부와 명예, 권위와 권세를
모조리 쟁취했건만
지금 내 마음은
허무와 무력감, 불안과 공포,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갈망들에
이리저리 요동칠 뿐
그 어떠한 쾌락도, 박수갈채도,
화려하고 안락한 생활도
내 마음을 흡족하게 하지 못하구나.
이리와 승냥이 같은 소돔 주민들은
호시탐탐 내 재산과 지위를 노리고 있고
내 주위는
달콤한 웃음 뒤에 잔혹한 술수를 감춘 사기꾼들,
걸쩍지근한 탐욕과 구역질 나는 정욕들로 번들거리는 변태들,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재산과 지위를 구걸하는 아첨꾼들만
넘쳐난다.
밤이나 낮이나
자리를 가리지 않고 홀레 붙는 사람들
욕망이 범람하면
아비가 며느리를, 어미가 아들을 범하며
심지어 짐승과도 서슴없이 관계하는
더럽고 추잡한 행태를 목격하기도
신물이 나는구나.
삼촌 아브람의 장막이 그립구나.
단순하고 건강한 삶.
규율과 사랑으로 견고히 세워진 공동체.
엄격한 규칙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온건히 서로를 아끼고 보살피는,
삼촌 아브람의 사람들.
그러나 지금 나는
삼촌에게 돌아갈 수 없는 몸이라네.
삼촌 아브람에게 돌아가기에
내 자아는
너무 비대해져 버렸다네.
내 소유가 너무 풍요로워졌다네.
내 평생의 노력과 행운을 기울여
이 도시에 축적한
소유와 지위, 권세와 기득권들...
이 모두를 포기하고
나는
도저히 삼촌에게로 돌아갈 수 없어..
이렇게 나는
화려한 껍데기 속에
초라하게 쪼그라진 영혼을 가두고
구슬피 노래만 부르고 있구나.
마흔에 접어들면서 불안과 공허함이 자주 엄습한다. 내 급여는 가족을 부양하기에 간당간당하다. 내 직장은 경제 상황에 따라 언제든 문을 닫을 수 있다. AI 기술이 무섭게 발전하고 산업 구조가 급변하면서 내 직무능력이 어느 순간 무용지물이 될지도 모른다.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많은 자산, 화려한 커리어, 다양한 인맥을 구축한 이들의 글이나 영상을 보면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나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자괴감마저 든다. 그렇게 마음이 흔들릴 때 롯의 이야기를 묵상한다.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가 나온다. 신(여호와 하나님)이 명령한 곳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고향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롯은 아브라함이 겪는 고난, 기근, 위기를 함께 겪거나 지켜본다. 신이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축복을 롯도 함께 받아 그의 일족과 재산이 불어난다. 아브라함과 롯의 자산이 너무 확장하여 함께 살기 어려워질 때 아브라함은 롯에게 제안한다. 네가 머물 곳을 먼저 정하라. 나는 네가 고르지 않은 땅으로 가겠다. 그때 롯은 소돔과 고모라를 택한다. 그 선택은 그동안 의지했던 신과 멀어지는 선택이었고, 신의 은혜와 지도를 의지하는 삶에서 맘몬(금권, 자본의 힘)의 세력을 더 의지하게 된 삶으로 전환되는 선택이었다. 소돔에서 롯은 소돔을 침략한 이방 민족에 의해 큰 위기를 맞는다. 그때 아브라함이 군사를 이끌어 롯과 소돔을 구원한다. 소돔 왕이 아브라함에게 보상을 제안했을 때 아브라함은 거절한다. 아마 아브라함이 거절한 보상이 롯에게 흘러들어오면서 롯은 소돔에서 좋은 입지를 얻었을 것 같다. 음란하고 퇴폐했으며 탐욕과 광기로 가득한 소돔. 그 안에서 높은 지위에 오른 롯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 안의 온갖 쾌락과 권력을 누리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그 속에서 만족하지 못한다. 그 속에서 상한 롯의 심령은 소돔을 멸망시키기 전에 찾아온 신의 사자들을 영접하게 했고 소돔 사람들이 그 사자들을 범하려 할 때 그들을 목숨을 걸고 지키게 했다. 그 덕에 소돔이 멸망할 때 롯은 두 딸과 함께 도피할 수 있었지만 모든 소유와 아내는 잃어버린다.
롯의 이야기를 묵상하다 보면 그가 나와 참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롯이 하나님을 믿고 겁 없이 고향을 떠났던 것처럼, 나도 뜨겁게 하나님을 믿었던 20대에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순종하겠다는 열망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상의 잔혹함과 나의 부족함을 절감하면서 점점 하나님보다는 돈이나 지위, 명예와 같은, 세상의 무언가가 더 미덥게 느껴졌다. 롯이 소유가 늘어났을 때 자신을 영달하게 할 만한 곳으로 보이는 소돔을 선택했던 것처럼, 나도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지켜야 할 것들이 늘어나자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하고 안정적으로 만들어줄 무언가가 너무나 갈급해졌다.
과연 내가 지금보다 수입이 많아지고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고 더 많은 자산을 구축하면, 그렇게 내 삶의 입지가 탄탄해지면 과연 지금과 같은 불안과 공허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결국 또 다른 불안과 공허감에 시달릴 것이다. 어떤 조건 속에서도 욕망은 끝이 없고 갈망은 채워지지 않으며 어디서든 이권 다툼은 끈질기게 벌어질 것이며, 예기치 못한 사고나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순식간에 삶이 뒤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롯이 소돔과 함께 한 순간에 몰락했던 것처럼.
롯의 이야기를 묵상하다 보면 결국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책임지시고 인도하심을 온전히 믿을 때에야 삶에 대한 불안과 공허감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불안을 야기하는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다.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내 전문성을 키워야 하고 급여 외에 수입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막막하고 두려워도 지금 할 수 있는 도전들을 회피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내 인간적인 노력만으로는 불안과 공허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고서는 내 안에서 몰아치는 어두운 감정들을 다루기가 힘들다. 나는 정말 하나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