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3장 11 ~ 12절을 단편 소설로 창작
사무엘상 23장
11절 그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라 블레셋 사람들이 사기가 올라 거기 녹두나무가 가득한 한쪽 밭에 모이매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되
12절 그는 그 밭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들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
둥둥 북소리가 들렸다. 지평선 너머로 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셀 수 없이 많은 적들이었다. 시야를 가득 메우며 적군은 서서히 진군해 왔다. 적들의 군세는 찌를 듯이 날카로웠다. 절그럭거리는 칼과 창에서 살기가 예리하게 번득였다. 뿔나팔 소리가 울리고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다. 여기저기서 구슬픈 비명이 울렸다. 아군의 전의는 급격하게 추락했다. 군사들이 하나 둘 전열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적의 군단이 가까워지자 아군은 칼을 한 번 맞대지도 못하고 산산이 흩어졌다. 전투는 섬멸전으로 전환되었다. 적들은 일제히 산개하여 아군을 추격하고 도륙했다. 적군은 사냥을 하듯 여유롭게 아군을 학살했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아군을 쫓아 일군의 적들이 녹두가 우거진 밭으로 들어섰다. 뒤쳐진 아군의 등을 향해 적병이 창을 내질렀다. 세차게 뻗어가던 창날이 순간 튕겨 올려졌다. 당황하여 창을 수습하는 적병의 얼굴에 주먹이 날아왔다. 급소를 가격 당한 적병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주먹을 날린 사내는 쓰러진 적병의 칼을 뽑아 적의 목을 베었다. 다른 적병이 사내를 향해 칼을 겨누고 쇄도했다. 사내는 돌진하는 적병을 향해 손에 든 칼을 던졌다. 칼은 적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순식간에 군병 두 명을 해치우는 솜씨에 놀라 적들은 사내에게 쉽사리 덤벼들지 못했다. 사내는 옆에 떨어져 있는 적병의 창을 집어 들었다. 사내가 예사롭지 않은 상대임을 깨달은 적들은 사내 주위를 포위했다. 적들은 포위망을 점차 좁히며 접근했다. 그러나 무성하게 우거진 녹두잎과 줄기들이 적들의 발에 차여서 완벽한 포위를 이룰 수 없었다. 순간 사내의 창이 번득였다. 창의 사정거리에 들어왔던 적병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사내는 녹두가 우거지지 않은 곳을 내딛으며 창을 휘둘렀다. 사내의 창은 살아있는 뱀처럼 솟구치고 휘날리면서 적의 목을 찌르고 가슴을 꿰뚫었다. 사내의 창보다 짧은 칼을 든 적들은 사내가 휘두르는 창의 위세에 눌려 감히 다가갈 수 없었고, 긴 창을 든 적들은 무성한 녹두에 발이 걸려서 제대로 창을 내지르거나 휘두를 수 없었다. 오직 사내만이 평지를 가는 듯이 편안하게, 녹두가 무성히 우거진 밭을 종횡무진하며 거침없이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순간 적들 뒤로 큰 소리가 들렸다.
- 모두 멈추어라!
적들이 칼을 거두고 물러났다. 적들 사이로 장대한 체격을 가진 사람이 나타났다. 갖춘 의복을 보니 적들의 지휘관인 듯했다.
- 너의 솜씨가 대단하구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사내는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
- 내 이름은 삼마요. 하랄 사람 에게의 아들이외다.
- 의복을 보아하니 군인도 아닐진대 싸움 실력이 훌륭하구나.
- 당신이 저들의 지휘관이오?
- 그렇다. 위대한 블레셋 군단의 돌격대장 아히스라 한다. 너도 내 수하로 들어오는 게 어떠하겠느냐. 여기서 죽이기에는 네 솜씨가 아깝구나.
- 당신이 나와 겨루어 이긴다면 그리 하겠소. 대신 그대가 진다면 부하들을 물려주시오.
아히스는 껄껄 웃으며 칼을 뽑았다.
-으하하하! 네 배짱이 맘에 드는구나. 좋다. 나와 한 번 겨뤄보자꾸나.
삼마는 창을 버리고 옆에 쓰러진 블레셋 군사의 칼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녹두밭에서 나와 아히스가 싸우기 적당한 대지에 섰다.
아히스가 웃으며 말했다.
- 네게 유리한 무기와 싸움터를 포기하다니, 나를 너무 얕보는 거 아니냐.
- 비겁한 방법으로 내 아비와 이스라엘의 명예를 더럽히긴 싫소.
- 으하하. 좋구나. 좋아. 자. 네 전력을 다해 덤벼보아라.
삼마와 아히스는 서로 스무 걸음 정도 간격을 두고 마주 보며 섰다. 아히스는 칼을 머리 위로 들고 공세를 취했다. 삼마는 자세를 낮추고 칼끝을 아래로 향했다. 서로의 빈틈을 찾아 두 사람의 시선이 날카롭게 부딪쳤다. 아히스가 좌로 걸으며 칼의 세를 낮추어 삼마의 어깨를 겨누었다. 삼마도 좌측으로 걸으며 칼의 방향을 바꾸어 아히스의 목을 노렸다. 순간 아히스가 벽력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삼마에게 달려들었다. 삼마는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드는 아히스의 칼을 오른손에 든 칼로 쳐서 흘려보내면서 몸을 솟구쳐 아히스의 몸을 밀쳤다.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온 충격에 균형을 잃은 아히스를 향해 삼마의 칼이 쇄도했다. 아히스는 몸을 오른편으로 날려 가까스로 삼마의 칼을 피했다. 아히스는 삼마와 다시 거리를 둔 뒤 자세를 수습했다.
- 촌뜨기 주제에 제법이로구나. 누구에게 배웠느냐.
- 당신네 군사들과 목숨 걸고 싸우는 세월 동안 몸이 알아서 익혔소.
- 하! 오만하구나! 나와 싸울 때도 마땅히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야!
아히스가 노성을 터뜨렸다. 삼마가 몸을 날려 아히스의 가슴을 향해 칼을 내질렀다. 아히스는 칼에 온몸의 힘을 실어 삼마의 칼을 맞받아 쳤다. 묵직하게 전해오는 아히스의 힘에 밀려 삼마의 몸이 휘청했다. 아히스의 주먹이 삼마의 얼굴을 향해 내리 꽂혔다. 삼마는 급히 고개를 숙여 주먹을 피했지만 다음에 날아오는 칼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아히스의 칼이 삼마의 오른팔을 깊이 베었다. 삼마는 칼에 베이는 순간 아히스의 다리를 걷어찼고 아히스가 휘청거리는 찰나에 몸을 뒤로 날려 아히스와 다시 간격을 벌렸다.
아히스가 헐떡이며 말했다.
- 이제 결판이 났구나.
삼마의 오른팔에서 피가 쏟아졌다.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삼마의 시야가 흐려지고 자세가 점점 허물어졌다.
- 칼을 쓰는 자가 팔을 다쳤으니 더는 싸울 수 없을 것이다. 패배를 인정하고 목숨을 구하라.
삼마는 자세를 다시 수습하며 칼을 왼손으로 옮겨 잡았다.
아히스가 놀라며 말했다.
- 몸이 그 지경인데 계속 싸우려느냐.
- 이스라엘의 검은 부서져야 멈추오.
아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 좋다. 내가 친히 너의 끝을 맺어주마.
아히스는 칼과 칼을 부딪치며 죽음의 아수라장을 헤쳐왔던 자의 본능으로 알 수 있었다. 비록 상대가 주력인 오른팔을 크게 다치고 피를 많이 흘려 기진맥진한 상태이지만, 상처 입은 야수가 사냥하기에 가장 위험한 것처럼, 이번 공격에서 자칫 잘못하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음을 아히스는 직감했다. 아히스는 서서히 칼을 들어 올렸다.
삼마는 칼자루를 앞으로 쥐고 칼날이 자신의 몸을 향하게 하여 상대로 하여금 칼이 어느 방향으로 뻗어나갈지 모르도록 감추었다. 수비를 포기하고 오직 공격만을 가하는 검세. 상대와 함께 죽을 각오로 휘두르는 일격필살의 검술. 삼마는 흐려지는 정신을 거두어 온 기력을 다해 마지막 남은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렸다.
삼마와 아히스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서로의 빈틈을 살폈다. 사위가 고요해졌다. 주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 외에 모든 것이 소멸하고 시간마저 멈춘 것 같았다. 오직 상대의 눈빛,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 호흡 소리, 상대를 향한 살기만이 존재했다. 찰나이나 무한과 같은 고요의 순간에..
삼마와 아히스가 동시에 서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두 개의 검이 서로를 향해 쇄도했다. 누가 누구를 베었는지, 아무도, 심지어 두 사람도 의식하지 못했다. 그저 고요하게 불어온 바람들이 서로 휘감기다 풀어져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듯이 두 사람의 칼날은 상대의 몸을 무심히 지나쳐 흘러나갔다. 삼마와 아히스는 그렇게 서로의 몸을 통과하여 반대편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툭
삼마의 오른 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허리에도 상처가 길게 나 있었다.
아히스가 말했다.
- 이제 끝이 났구나.
- 그렇구려. 더는 싸우기 어렵겠소.
아히스가 웃으며 말했다.
- 무인의 끝을 이렇게 보게 되어 좋구나. 하하.
순간 아히스의 몸에서 피가 폭우처럼 쏟아졌다. 가슴과 배를 지나 허리까지 난 상처가 깊었다. 상처로부터 아득한 잠결처럼 죽음이 쏟아져 들어왔다. 아히스는 잠결에 취한 듯 중얼거리며 말했다.
- 무인답게 죽게 해 주어 고맙다.
쿵
육중한 비석이 넘어지듯 아히스의 몸이 쓰러졌다.
삼마는 무너지듯 주저앉으며 말했다.
- 이스라엘의 무인은 일이 끝났다는 명을 받아야 죽을 수 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