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거세게 북받친다. 바람의 힘을 얇은 막 하나로 버티며 연은 하늘 높이 비상한다. 푸른 하늘이 연의 시야에 가득 찬다. 온몸 가득히 밀려드는 바람을 버티며 활대도 천도 찢어질 듯 팽팽해진다. 드높이 치솟는 비상을 사랑하면서도 연은 자신의 몸을 괴롭히는 바람이 끔찍했다. 바람에게서 도망치고 싶어 몸을 이리저리 뒤틀어보지만 소용이 없다. 연의 몸을 옭아 맨 줄 때문이다. 연이 바람을 피하려 몸을 움직이면 줄은 연의 몸을 당기며 바람을 끝까지 버티길 강요한다. 오랜 시간 바람을 감당하며 피로해진 연이 그만 지상으로 내려가고 싶어도 연 줄은 허락하지 않았다. 반대로 연이 더 하늘 높이 치솟고 싶어도 연줄에 붙들려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하기도 했다. 연줄에 매인 연은 비상도 착륙도 제 뜻대로 하지 못했다.
저 놈의 줄만 없다면
연은 증오의 눈길로 줄을 바라본다.
내 몸을 옭아 맨 저 줄만 없다면
나는 더 자유롭게 날 수 있을 텐데.
힘들게 바람에 맞서지 않고
편안히 바람의 흐름을 타며
하늘 높이 훌훌 날아갈 수 있을 텐데
내 마음대로 날아오르고
내가 원할 때 내려오를 수 있을 텐데
저 줄만 없다면..
그렇게 한탄하고 있을 때
갑자기 줄이 투툭 끊어지기 시작했다.
연은 잠시 고민했다.
줄의 속박에서 벗어날까? 아니면 이대로 살아갈까? 이전까지 살아보지 못했던 삶.
순간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가 아니던가.
연은 몸을 더 움직여
눈을 질끈 감고 끈을 끊었다.
툭.
온몸을 구속했던 줄의 힘이 순간 끊어졌다.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해방감이었다.
완전한 자유.
온몸을 욱 받치는 바람에 맞서지 않고 그저 몸을 빙그르르 휘돌며 흐느적흐느적 바람을 타면 되었다. 홀가분하고 유유자적하게 하늘을 활공하는 삶. 연이 그토록 바랐던 자유.
그런데
연은 점차 불안해졌다.
아무리 애를 써도 고도를 높일 수 없었다.
바람을 타보려 하지만 한 없이 가벼워진 몸은 바람을 버티지 못하고 그저 힘없이 휘날릴 뿐이었다. 바람에 튕겨져 나가 조금 하늘로 솟구치기도 하지만
잠시뿐
덧없는 추락을 멈출 수 없었다.
점차 다가오는 밑바닥을 바라보며
연은 깨달았다.
나를 옭아맨다고 생각한 줄이
나를 훨훨 날아오르게 했구나.
줄이 나를 구속한다고 생각했는데
줄은 나를 하늘로 날아 올렸구나.
줄에 묶인 몸이 구속인 줄 알았는데
줄에 묶여 있었기에 자유롭게 비상할 수 있었고
줄에 풀린 몸이 자유인 줄 알았으나
결국 바람과 중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무력한 몸이 되었구나.
마침내
바닥에 나뒹굴게 된 연은 바람에 따라 여기저기 휘날리며 온몸이 상하였다. 나뭇가지에 걸려 찢기고 땅바닥을 뒹굴며 활대도 부러졌다. 다시 하늘로 날아오를 수 없는 몸을 바라보며 연은 절망했다.
그리고 갈망했다.
다시 한번
저 줄과 연결될 수 있다면
줄을 힘껏 잡아주는 손과 연결될 수 있다면
다시 한번 날아오를 수 있다면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연이 여기 있구나."
익숙한 손길이 다가왔다.
주인의 손은 연의 부러진 활대를 교체하고 찢어진 연의 막을 다시 벗겨내어 튼튼한 종이로 바꾸어 발라서 다시 새로운 몸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다시
연 줄을 매었다.
줄에 매달려 하늘로 비상하면서
다시 온몸 가득 바람을 받으면서
연은
줄의 통제에 온전히 몸을 맡겼다.
자신의 몸을 당기거나 풀어주는 줄을 타고
전해지는
주인의 의지와 능력에
온전히 자신을 의탁할 때
더 높이
더 오래
날아오를 수 있음을
알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