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우호적 감정>이 우리에게 던지는 불편한 질문.
성해나 소설집 [혼모노]에 수록된 7편의 단편소설들은 끔찍한 살인이나, 끈적끈적한 불륜처럼 자극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등장인물들도 평범한 편입니다. 유명 감독을 사랑한 팬(길티 클럽 : 호랑이 만지기), 보수 집회에 우연히 참여한 미국계 한국인(스무드), 도태되어 가는 무속인(혼모노), 광적으로 건축에 매달리는 설계사(구의 집 : 갈월동 98번지), 마을 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스타트업 직장인(우호적 감정), 딸의 출산을 돕는 어머니(잉태기), 메탈 음악에 열광했던 청년(메탈).... 이렇듯,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보통 겪을 법한 이야기들을 담은 책인데, [혼모노]를 읽다 보면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에 휩쓸립니다. 처음 몇 장을 읽기만 해도 마음이 불편해져서 당장이라도 책을 덮어 버리고 싶었는데,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계속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됩니다. 일곱 편의 소설을 단숨에 다 읽고 나서 생각했습니다. 이토록 불편한 이야기에 나는 왜 그토록 매료되었을까... 그 이유를 [혼모노] 소설 뒤편에 수록된, 양경언의 해설을 보면서 조금 알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성해나의 소설이 남기는 잊기 힘든 결말에 대해 말해야겠다는 갈급함을 느낀다.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여느 마침표가 성해나의 작품에서만큼은 완결을 위한 기능으로 쓰이지 않는다. 독자는 한동안 이야기가 지나간 자리에 우두커니 머무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여운이 남는다거나, 감상에 젖게 만든다는 표현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마지막 문장 끝에 찍힌 마침표가 결말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진 독자를 비추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성해나가 전하는 이야기에는 이미 우리가 있고, 그 이야기는 동시에 우리의 삶을 형성한다고. 그러니 성해나의 소설을 막 읽은 뒤 독자는 요동치는 감정의 파동을 감당하면서 스스로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고.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혼모노 P335 ~ 336 < 해설 : 진짜? - 성해나 소설의 '나아감'에 대하여 > 중 발췌
독자를 비추는 거울 같은 소설. 성해나의 이야기에는 이미 우리가 있고,
그 이야기는 동시에 우리의 삶을 형성한다.
여기 마법 거울이 있습니다. 오직 진실만을 비추는 거울. 그 거울 앞에 서면 사람이든, 세상이든, 무엇이든 그 속에 교묘히 감춰진 어두움, 즉 위선이나 탐욕, 허물, 부조리함 등이 훤히 드러나 버립니다. 그런 마법 거울과도 같은 책이 성해나 작가의 단편소설집 [혼모노]입니다.
이 책에 수록된 일곱 편의 단편소설들은 애써 감추려 했던 우리 내면의 불온함들을, 그리고 뻔히 보이지만 보지 않은 척 눈감아버렸던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들을 훤히 드러냅니다. 그렇게 [혼모노]는 나 자신에 대한, 그리고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세상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고발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소설 속 문제적 인물들과 얼마나 다른가? 소설이 고발하는 세상의 부조리함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 글에서는 [혼모노] 중 <우호적 감정>이 던지는 불편한 질문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우호적 감정>은 어떤 스타트업 회사에서 '알렉스'라는 닉네임으로 근무하는 직장인의 이야기입니다. 이 회사는 '자율성', '공정성', '치열함'을 추구하며 '수평적'이고 '친밀한' 조직 문화를 도모합니다. 모두가 평등한 위치에서 편안하게 소통하기 위해 사장, 부장, 대리 등 직함을 없애고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르지요. 사무실에는 생맥주 디스펜서와 와인 셀러가 비치되어 있고, 자율 복장으로 근무하며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은 사내 소통의 날로 정해 오전 근무만 하고 오후에는 보드게임 카페에 가거나, VR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겉보기엔 이상적인 회사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스타트업 회사 대표인 맥스는 사원들과 평등한 관계 속에서 친근한 소통을 중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권위적이지 않은 말과 행동으로 사원들과 소탈하게 소통하지요. 하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맥스와 사원들의 실제 관계는 그렇게 평등하지 않습니다.
맥스는 마케팅팀에서 한 명, 기획팀에서 한 명을 추려 새 팀을 꾸려보자고 했다. 소서리를 지속 가능한 공동체로 만들어줄 팀을.
조인시키고 싶은 멤버 있어요?
비교적 합이 잘 맞는 내 또래의 멤버들을 속으로 떠올리는데 맥스가 선수를 쳤다.
난 수잔, 진이 알렉스랑 같이 이 TF를 맡아보면 좋을 것 같은데 어때요?
역시 답은 정해져 있었다. 매사 회의적이고 불평이 많은 수잔, 그리고... 진. 싫은 내색은 못한 채 맥스를 향해 억지로 미소지었다.
좋죠. 경험 많은 분들이어서 든든하겠네요.
그래요 버티컬하게 가보자고요. ( <혼모노> p212 ~ 213 )
소서리 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TF팀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업무 담당자인 알렉스의 의사는 전혀 고려되지 않습니다. 대표인 맥스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대로 팀이 구성됩니다. 알렉스는 맥스의 결정에 더 이견을 내지 못하지요. 역시 답이 정해져 있다고 체념하면서요. 평등한 관계를 지향한다는 회사의 의사소통 구조가 사실은 전혀 평등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회사 운영의 '공정성'을 중시한다고 하면서도 맥스는 사원의 기본 복지를 소홀히 여깁니다. 그는 법정근로시간인 주 52시간제에 대해 부정적이며, 육아 휴직 제도 도입에 대해서도 소극적입니다.
피로는 간 때문이 아니라 야근 때문이라는 걸 맥스는 모르는 것 같았다. 맥스는 주 52시간제를 반대했다. 그는 실리콘밸리가 인재의 요람인 이유는 근무 시간에 제약을 두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혼모노>p210)
이를테면 자녀의 대학 등록을 두 달 앞두고 전 직장에서 퇴직 권고를 받았던 진의 후일담이나 육아 휴직을 만들어달라고 맥스와 몇 차례 대치했던 수잔의 외로운 투쟁 같은 것. ( <혼모노> p224 )
이런 회사에서 알렉스는 진, 수잔과 함께 '소서리'라는 마을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소서리'는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작은 농촌 마을로, 인구 소멸로 쇠퇴해가는 농촌을 살리겠다는 이상을 품고 열명 남짓의 사람들이 귀농하여 마을 학교, 지역 신문사, 양조 사업도 하는 곳이었어요. 알렉스는 소서리 이장인 권도우 씨 및 마을 주민들과 함께 '상생, 포용, 협력, 정, 지속 가능성'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마을 곳곳의 매력적인 공간들을 연결하여 소서리를 사람들이 찾아오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어 갑니다.
소서리도 겉으로 보기에는 마을 재생이라는 이상에 동의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함께 살아가는 이상적인 공동체로 보입니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소서리에 모인 사람들의 실체가 금세 드러납니다.
그래도 저희 여섯 명끼리는 합이 맞을 줄 알았거든요. 마을 재생사업도 그래서 시작해 본 거고요. 이번에는 원주민들하고 합의도 봤어요. 그런데....
투자처에서는 수익을 6대 4로 분배하길 원했다. 주민에게 돌아갈 몫이 4였는데, 그것을 어떻게 나눌지 상의하다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6등분한 땅 때문이었다. 정미소와 쌀 창고가 들어선 부지의 소유주들은 커미션을 요구했고 자신들의 이익이 크지 않을 경우 숙박 시설을 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미소를 경계로 파가 갈렸다. 그 파에 속하지 않은 권도우 씨는 발언권을 잃었고.
강규 선배가 공정하게 나눈 땅이 도리어 관계를 악화시켰다고 권도우 씨는 주장했다.
이젠 아주 이골이 나요. 겉으로는 좋아 보여도 속은 다 썩어 있어요. 저는요, 이제 그 동네 사람들이 제일 불편해요.
(<혼모노> p234)
투자로 들어온 돈을 배분하는 문제에서 소서리 사람들의 관계가 악화됩니다. 결국 돈을 누가 더 가져가느냐 라는 문제 앞에서 공동체보다 자신의 탐욕만을 추구하는, 진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지요. 소서리 사람들이 이권다툼에 빠져드는 모습에 이골이 나서 소서리를 떠나버리는 권도우 씨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가 소서리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이유도 결국 이익 때문입니다.
조금 뒤 권도우 씨와 진이 돌아왔다. 권도우 씨의 표정은 아까와 달리 한결 밝아져 있었다. 그는 진을 향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계약서에 명시된 조항이나 수익 분배에 관해 특히 끈질기게 질문했다.
형님, 그럼 그쪽에 수익을 더 나눠주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그럼, 여기 계약서를 보면....
그 짧은 사이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건지 두 사람은 어느새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진은 계약서 항목을 일일이 짚으며 지분을 어떻게 더 가져올지 설명했다. 수잔과 내가 끼어 들 틈도 없었다.
(<혼모노> p236)
권도우 씨가 소서리를 떠나면서 소서리 마을 재생 프로젝트가 무산될 위기에 봉착하자 진이 권도우 씨를 설득하는 장면입니다. 진은 권도우 씨에게 수익배분에서 다른 사람에게 더 이익을 나누어주지 않을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러자 권도우 씨는 진을 '형님'으로 부르며 소서리로 복귀하여 마을 재생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겠다고 말합니다. 농촌 재생이라는 이상을 순수하게 추구하는 듯 말하던 권도우 씨도 결국 자신에게 배분될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지요.
이렇게 스타트업 회사를 운영하는 맥스나 농촌 재생을 위해 소서리로 내려간 권도우 씨가 겉으로는 멋진 이상을 추구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을 꿰뚫어 본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수잔입니다.
나도 이 회사 처음 들어왔을 땐 알렉스랑 비슷했어요.
저요?
항상 해맑잖아요. 일이 많아도 웃고 사람들이랑도 잘 지내려고 하고요. 나도 그랬거든요. 근데 오래 구르다 보니 찌들더라고요.
수잔은 초창기의 자신이 얼마나 열정 넘쳤는지, 아이를 어린이집 종일반에 맡기고 출근하던 길에 얼마나 자주 울었는지 털어놓았다. 살짝 오른 취기 때문인지 나는 수잔에게 이런 질문까지 했다.
근데 왜 아직 회사에 남아 있어요?
글쎄요...... 아직 이 회사에 기대를 거나?
(<혼모노> p223)
수잔은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 사교성이 넘치고 매우 열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수잔은 매사에 회의적이며 깐깐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업무상 빈틈을 부드럽게 넘기지 못하지요. 상상해 보건대 수잔은 육아 휴직 문제로 대표인 맥스와 부딪치는 등, 회사 내 부조리와 싸우는 과정에서 점차 회사에 회의적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습니다. 그런 그녀이기에 소서리에 모인 사람들의 실체도 꿰뚫어 봅니다.
권도우 씨 말예요, 괜찮을까요?
뭐가요?
소서리 사람들끼리 가족 같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사이가 벌어져서.......
수잔은 자료에 시선을 고정한 채 차갑게 말했다.
그런 관계가 어디 있겠어요. 다 환상이죠.
(<혼모노> p235 ~ 236)
이 소설에서 수잔은 스타트업 회사나 소서리 안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소서리의 수익구조를 정하는 과정에서 진과 권도우 씨가 마을 사람들과 협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에 대해 쓴소리를 합니다.
진, 아까부터 얘기하고 싶었는데요. 왜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해요?
예상외의 상황이었다. 권도우 씨도 어리둥절해 보였다. 진은 허허, 웃음 지으며 상황을 무마하려 했지만 수잔은 결코 굽히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는데 왜 갈등을 부추기고 마을 사람들을 갈라놓는 거냐고 쏘아붙였다.
이게 진이 잘한다는 협상이요? 진,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면 안 되죠.
수잔은 소서리 사람들을 모아 입장을 듣고 제대로 수익을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혼모노> p237)
수잔이 반대했지만, 은밀하게 수익 배분을 해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진의 방식이 결국 관철되었습니다. 소서리의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으며 수익을 제대로 배분하자는 수잔의 의견은 묵살됩니다. 합리성과 공정성을 추구했던 수잔은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반면에 불공정하고 비열한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진은 회사에 남아, 신년회 및 전체 회식 자리에서 모든 사원들 앞에서 대표인 맥스의 칭찬을 받습니다.
단기간에 이렇게 폭발적으로 성장한 팀은 없었던 것 같아요. 특히 진에게 크레디트를 드리고 싶어요. 다들 박수 보내주세요.
진은 맥스의 술을 받아 마시며, 허허, 웃었다. 90년생인 맥스와 그보다 족히 스무 살은 많은 진. 그 둘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해졌다. 서글퍼지기도 했다. 그러한 감정은 이 자리에 없는 수잔 때문에 비롯된 것 같기도 했다.
(<혼모노> p239)
이 장면을 읽으면서 복잡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자율적이고 평등하며 공정한 경쟁을 추구했던 스타트업 회사. 농촌 재생이라는 이상을 위해 귀농한 사람들이 가족 같은 공동체를 만들겠다고 모인 소서리. 그러나 그 실상은 결국 불합리한 의사 구조 속에서, 그렇듯 하게 포장된 이상 속에 감추어진 탐욕에 따라 불공정하고 비열한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좌우지되는 집단이었습니다.
<우호적 감정>을 읽으면서, 겉으로는 아름다운 이상을 추구하는 척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위선과 탐욕, 이기주의를 선택하고 마는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우리의 멋진 이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끼리 싸우지 맙시다. 좀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모른 척합시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그들은 '우호적 감정'을 조장하면서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구조는 은폐합니다. 그 과정에서 알렉스처럼 순수한 사람들은 열정 착취를 당하고, 수잔처럼 합리성과 공정함에 따라 정당한 요구를 하는 이들은 결국 축출당합니다. 오직 맥스와 진처럼 교묘하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만 승승장구합니다.
그렇다고 맥스와 진을 무조건 악한 이들로 치부하기는 어렵습니다. 맥스와 진의 선택에는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기 때문이죠. 맥스는 스타트업 회사의 대표로서 피 말리는 생존 경쟁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자율'이나 '공정'이라는 '이상'보다 효율적으로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에 끌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진은 대기업에서 쫓겨났던 아픈 과거가 있었어요. 그런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도덕적 이상'이 아니라 눈앞의 '확실한 성과'였을 것입니다. 맥스와 진의 비열함과 위선은, 어쩌면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먹고살기 위해 때로는 부조리한 현실에 눈을 감고, 가끔은 비겁해지는 우리네 평범한 직장인들의 얼굴이 겹쳐 보입니다.
사람들과 섞여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다 딤섬을 입에 넣었다. 입안에서 얇은 피가 터지며 뜨거운 육즙이 흘러나왔다.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서로의 그릇에 음식을 덜어주고 술잔을 채워주며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정이 흘러넘치고 우호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그 안에서, 나는 뜨거운 딤섬을 차마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채,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혼모노> p240 )
소설 <우호적 감정>을 읽는 경험은 알렉스가 딤섬을 입에 머금고 있는 순간과 닮았습니다. 얇고 매끈한 만두피처럼 소설 속 세상은 겉보기에 더없이 우호적입니다. 하지만 그 피상적인 막이 찢기는 순간, 입천장이 데일 정도로 뜨겁고 비릿한 현실이 육즙처럼 터져 나옵니다.
그 현실이란 '우리'라는 허울 뒤에 숨겨진 냉혹함입니다. 겉으로는 웃으며 파이팅을 외치지만, 이익 앞에선 가차 없이 동료를 배제하는 비정함.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 타협하고 침묵하는 개인들.
차라리 그들이 명백한 악인이라면 그냥 뱉어버리면 됩니다. 나쁜 놈들이라고 욕하고 잊어버리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그들이 '어쩔 수 없이' 택하는 행동들이 현실적으로 이해되기에 그들을 뱉어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위선을 꿀꺽 삼키며 옹호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이 '어쩔 수 없다고' 저지르는 반칙들이 쌓여, 결국 수잔과 같이 양심적인 이를 내쫓는 병든 공동체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호적 감정>은 문제적 인간들을 뱉어내지도 삼키지도 못한 채 고통스럽게 '머금는' 순간들을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만약 당신이 속한 집단에게서,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서, 혹은 당신 자신에게서 어떤 불편한 진실을 발견한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