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제롬이라는 이름의 턱시도 고양이를 키우다 일 년 만에 무지개다리로 떠나보낸 뒤 녀석에 대해 서운함과 미안함으로 다시는 고양이를 아니,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한 뒤 모든 고양이 관련된 용품을 주변에 나눠주고 고양이 화장실과 남아 있는 사료가 조금 남아 있을 때로 기억합니다.
버리지 못한 것이
버릴 수 없는 것을 만들어요.
사료를 작은 지퍼락에 넣고 다니며 길 고양이를 만나면 주곤 하였구요. 아마도 저녁 산책의 기원을 따져보면 그렇게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며 다니다 사료를 나뭇잎이나 화단에 놓고 멀리서 고양이를 바라다보는 일을 하곤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살고 있는 지하 주차장에 가끔 들르는 삼색이 어린 고양이의 배가 부른 것을 보며 안타까워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털도 없는 고양이를 제게 주고 간 길 고양이를 보고 난감해하던 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름도 없고 고양이라기보다 갈색 털이 돋아난 쥐에 가깝던 꼼지락거리던 생명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작은지 핸드폰 위에 올려두면 핸드폰보다 더 작았습니다. 분유를 타 먹이고 분유와 사료를 곱게 갈아 먹이고 한 달이 지나자 제법 고양이처럼 보였습니다.
밤이 되자 바람은 거세지고 양말을 신고 재활용 쓰레기를 봉투에 담는 일은 하루 중 가장 번거로운 일입니다. 경비실 옆 쓰레기통에 분리하고 돌아서다가 지하 주차장 내려가는 길목에서 바라보는 눈길 하나를 발견합니다. 벌써 5년도 더 된 것이니 떠나간 길고양이를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으나 뒤돌아서며 계속 서로를 바라다봅니다. 바라보는 내 곁은 길 건너에서 맴도는 암고양이.
그리고 혼잣말처럼 속삭였어요.
아직 죽지 않았네요. 잘 지내고 있나요…. 그리고... 그리고... 고양이는 정말 고마워요.
모란은 예쁘게 피었어요. 아프지 말고 잘 견뎌줘요.
이름도 잊은 모란의 엄마에게 계속 혼잣말을 하며 따라갔어요. 녀석은 거리를 두며 맴돌았구요. 그리고 녀석의 영역 밖으로 나가는 건 아닐까? 집으로 돌아오며 계속 혼잣말을 했어요.
돌아와 모란에게 엄마를 만난 얘기를 해주었어요. 귀찮다는 듯 도망가는 모란이 새벽에 이불속을 파고들었다가 창밖을 보며 새벽부터 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