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모래주머니 같구나. 몸무게만큼의 모래주머니가 길 위를 걷고 모래주머니가 터지지 않도록 묶어놓은 부분에 가만히 담배 한 개비를 꽂고 연기를 피워 올리거나 담겨있던 모래가 새어나가지 못하게 주머니를 살펴보며 구멍 난 양말을 꿰매듯이, 혹은 떨어진 단추를 달기 위해 같은 색의 실을 고르거나 그 작은 바늘구멍에 낙타의 털 같은 실을 입 안에 넣고 날카롭게 꿰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그를 언제 만났는지 기억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를 만난 것이 사실인 건지 의구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
어릴 때 몽유병이 앓았던 그는 간혹 이상한 곳에서 잠이 깨곤 했다고 했는데 가까운 곳은 집 앞 슈퍼문을 열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깨거나, 멀리로는 아카시아 숲을 지나 약수터 입구에서도 깼다고 했었어. 다행인 것은 늘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서 나갔다는 거야.
그를 다시 만난 건 지난 주였었는데.
며칠 전 새벽에 문득 그는 잠이 깼다고 했어. 그의 어린 몽유병은 이제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다고 했어. 가로수들이 서로의 자리를 바꾸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는 거야.
가로수들은 서로가 바라보는 풍경이 지겨워지면 간혹 자리를 바꾸곤 하는데 처음엔 같은 수종끼리 자리를 바꿨다고 해. 혹시 알아보는 사람이 생긴다면 무척 곤란한 일이 될 거란 건 불 보듯 훤한 일이니까. 이제 다른 수종에 상관없이 자리를 바꿔도 아무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구
어. 우리 집 앞엔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은행나무가 아니었나. 이런 식인 거지.
가로수 따위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거야. 기억은 편리하게 바꾸면 되는 거니까. 게다가 가로수들이 자리를 바꾼다는 걸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느냐구.
게다가 겨울엔 빈번하게 자리를 바꾼다고 해. 바람이 덜 부는 거리로 가기 위해 건널목을 건너기도 한다고 해.
꽃지고 잎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잘 모르거든.
간혹 담장 안의 유실수들과도 자리를 바꾸는데 담장 안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나온 나무는 봄이 올 때까지 다시 담장 안으로 들어갈 기회는 좀처럼 나지 않는다는 거야.
따뜻한 담장 안의 가로수는 봄이 되어야 자리로 돌아간다는 거야. 봄이 되면 꽃을 피워야 하는데 가로수는 열매를 맺지 않거든.
그날도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나온 그가 아직 뿌리를 뽑아내는 가로수를 기다리며 젖은 뿌리를 드러낸 가로수에게 들은 얘기를 넋을 잃고 들었어.
출근하는 길에 아직 마르지 않은 흙으로 서 있는 가로수들을 유심히 바라보게 될 것 같아.
그를 언제 어디서 만난 건지 기억해야겠어.
내가 지나온 자리로 가늘고 길게 모래가 쏟아져 내린 자국이 드러나 보여. 허리를 숙여 보면 모래주머니 하나가 흘리고 지나간 자국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