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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적 Nov 19. 2024

포개어진 나

오늘 만났던 나는

입동이 지난 걸 입동이 지나고 에제 알았습니다. 하나의 이야기의 퍼즐은 잃어버렸던 조각을 끼워 맞추며 알게 됩니다. 어제가 왜 유별나게 추웠는지 오늘 새벽은 왜 이리 두껍고 단단해서 발길을 옮길 때마다 살얼음이 깨지는 소리를 냈었는지 말이죠.


   


겨울에 만나 봄을 나눈 사람과 그 겨울에 여름을 사랑한다고 말한 사람과 가을이 지나고 입동이 지나도 행방불명된 사람을 지니고 있습니다.      

겨울, 봄, 여름 그리고 가을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떠나거나 떠나고 있는 사람들을 기억하며 고마움을 전합니다.      


지금은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지만, 집 근처 아파트 벼룩시장에서 아주 오래된 매트료시카 인형을 사가지고 온 적이 있었습니다. 인형은 한 가족이었는데 모두 여자였습니다. 한 사람을 살며시 비틀어 열면 그보다 작은 사람이 나오고 다시 그녀를 비틀면 더 작은 그녀들이 나타났습니다.    

            

제일 작은 그녀 더 정확히 말하면 더 이상 그녀가 없는 상태가 되려면 꽤 오랜 시간 그녀를 비틀어 그녀를 꺼내야 했습니다. 그녀는 같은 표정을 하고 같은 의상을 입고 작아질수록 더 뜨거운 체온을 가지고 있는 듯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더 작아지는 그녀를 만날 때마다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을 세워두고 말을 걸기도 하였습니다. 누군가 곁에서 보면 기괴할 거라는 생각을 하였으므로 혼자 있는 집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일이기도 하였습니다.      


아마도 하루에 있었던 일을 얘기한 것 같은데 웃겼던 이야기나 화가 났던 이야기, 그리고 슬픔에 관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어쩌면 이전의 누군가와 나누었을 이야기를 묻어둔 채 다시 서로를 보듬어 처음 만났을 때의 더 이상 보듬어줄 존재가 사라질 때까지 보듬어주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뚝이 모양으로 5개, 7개의 80%씩 작아진 모양으로 서로를 비워내거나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간혹 하나를 덜 채워 넣으면 안쪽의 인형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 곤하였으므로 서로를 잃어버릴 일은 없었습니다.      


사람에게도 그런 작은 나를 꺼내고 싶은 날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다소 편협한 사고방식과 유연하지 못한 행동으로 자칫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실은 낯선 사람에게 좀처럼 말을 걸지 못하는 혹은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행동에서 두려워하는 양상으로 변하며 낯선 곳에 가서 길을 잃어도 도무지 길을 묻지 않고 시간을 낭비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때는 그런 나도 길가는 아무나 붙잡고 인사를 하고 길을 물으며 좀 더 적극적인 사람으로 변하곤 합니다. 그런 일은 대부분 나를 모르는 타인 앞에서만 가능한 일이므로 그런 일이 지나고 보면 어쩌면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곤 합니다.      


건물 아래에 24시간 국숫집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어서 매일 지나다니며 늦은 밤 술에 취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들러 뜨거운 국물로 속을 푸는 사람들과 새벽녘 일을 나가기 전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로 늘 좌석이 모자라는 광경을 마주하곤 합니다.      


그녀의 옷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목이 늘어난 티에 얇은 겉옷을 입은 그녀가 국숫집 앞에 서 있는 걸 보며 산책을 나갔습니다. 국숫집 앞을 지나치다 다시 멈춰 서서 국숫집 앞에 다가갔다 다시 지나치던 그녀의 걸음걸이는 슬리퍼 사이로 꼼지락거리는 발가락들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멀리 국숫집 앞을 떠나지 못하는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가슴속에서 성냥 하나가 켜지는 냄새가 났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가 주머니 속을 뒤져 지폐와 동전을 다른 손에 쥐고 돈을 세고 있습니다.     

그렇게 돈을 열심히 세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침을 먹지 않은 지 십 년이 지났습니다.      

 갑자기 낯선 사람에게 건넬 말을 연습하고 있는 나를 만났습니다.     


저어 초면에 죄송한데….     


저어 초면에 죄송한데…. 제가 아침에 못 먹어서 그런데….     


저어 초면에 죄송한데…. 제가 아침을 못 먹어서 그런데…. 제가 혼자서 밥을 먹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저어 초면에 죄송한데…. 제가 아침을 못 먹어서 그런데. 제가 혼자 밥 먹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같이 국수를 먹어주실 수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게 맞는 말이야?   

   

이게 상대방을 설득할만한 말인 거야?      


너무 작위적인 말 같지 않아?               


거절당하면 창피해서 어떡하지 그녀가 괜찮다고 하며 매정하게 자리를 떠나버리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편이 나 다운 건데.     


저어….     

 


처음 섰던 무대에서 대사를 정확히 한 건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쓰고 있던 안경너머로 그녀가 안개처럼 사라졌다 나타났습니다.




그녀가 흘러내리는 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몇 번이나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합니다.      

저도 고마웠다고 인사를 합니다.      


나답지 않은 나도...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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