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퇴근 무렵 새로 들어온 거래처 여직원과의 마지막 통화를 위해 번호를 누르고 모니터를 바라봅니다. 수신음이 종착역에 도착할 즈음 전화를 끊으려던 순간, 상대가 전화를 받아버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번호 하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잠시 망설이던 그 짧은 시간 동안 사과의 말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백 년쯤 말을 해본 적이 없는 것처럼 메마르고 목이 잠긴 목소리의 그녀가 말을 했습니다.
OO 오빠 끊지 말고 그냥 내 말 좀 들어줘요….
그녀의 말을 듣고 덜컥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왜 아무 말도 없이 전화를 끊은 건지 알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나는 그 말을 들을 수 없고 들어서도 안 되며 그녀의 마른 목소리가 이제 곧 사라질 것 같다는 공포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다시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끊지 말아요. 그냥 내 얘기 좀 들어주세요. 나…. 사실…. 오빠가….
그녀의 말은 느렸습니다. 아주 느리게 날아오르는 고무 동력 비행기처럼 감겨있던 고무줄이 몸을 풀며 프로펠러를 돌리듯이 천천히 허공을 날아 아직 착륙지점을 찾지 못한 채 선회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 고무줄이 다 풀리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프로펠러가 멈추기를, 그녀의 흐려진 말투를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왜 그 말을 끊고 나는 그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사 문을 벗어나 큰 길가를 지나쳐 외진 골목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녀의 힘없는 목소리가 방해되지 않도록 더 외진 골목으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가슴이 떨려왔습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실 때는 들리지 않도록 핸드폰을 입에서 멀리 떼어내고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탄성은 매듭을 모두 풀고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고 프로펠러는 멈출 것이며 더 이상의 상승기류를 찾지 못한 동체는 결국 바닥을 향해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오빠가…. 너무 고통스러워하니까…. 이제 그만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었어…. 미안해…. 거기선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내 맘대로 생각해서…. 그것도 미안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침을 삼키는 소리도 들릴까 봐 계속해서 핸드폰을 입가에서 멀리하고 듣기만 했습니다. 간혹 그녀가 말을 하기 위해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 간헐적으로 젖은 기침을 하는 소리, 그리고 흐느끼는 숨소리가 불편하지 않도록 잠시 말을 멈출 동안만 들숨을 쉬고 날숨을 쉬었습니다. 꽤 오랫동안 숨을 멈추고 있느라 몸에서 열이 나고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오빠 나 그래도 우리 소연이 키우려고 열심히 살고..... 있어요 어젠 가게에서… 김장을… 500 포기나 하느라고 몸살이 났지 뭐야… 감기약 먹으려고…. 밥도 열심히 챙겨… 먹고…. 있어요.... 점심…. 먹고 잠들었는데 전화받고 보니 방안이 깜깜해서..... 놀랐어요… 오빠....고마워요......그..리..고 많이... 사랑... 했었나 봐요.. 내가..
가슴에서 정전기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온몸의 솜털들이 일어서고 그 솜털사이로 불꽃이 일더니 눈에 보이는 불꽃이 가슴을 시작으로 얼굴까지 타고 오르는 게 느껴졌습니다. 자꾸만 마른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어냈습니다.
전화가 끊긴 뒤에도 그녀라는 이름의 동체는 바닥으로 하강하지 않은 채 계속 노을 진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길이 나지 않은 숲으로 들어가 나무 곁을 지날 때 거미줄을 뒤집어쓴 것처럼 알 수 없는 감정을 걷어내느라 얼굴을 비벼대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저녁을 먹었을지 그리고 약을 먹은 건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깊은 곳 어딘가에 걸려있는 닻을 끌어올리지 못한 선체는 일렁이는 바다 위를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금요일 오후 3시가 지나자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행복한 꿈을 꾼 줄 알았다고, 몸살이 너무 심하게 걸린 데다 약 기운에 취한 것 같다고, 목소리가 아는 사람과 너무 닮아서 착각한 거라고, 선생님께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너그러이 용서해 달라고.
문자를 천천히 읽어 내려갑니다. 읽을수록 수화기 속의 그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모래를 뒤집어쓰고 사막을 건너고 있는 장수풍뎅이의 발자국 같은 목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