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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적 Nov 14. 2024

무용한 것을 사랑합니다.

The Montage of Kisses

눈을 뜹니다. 알람을 듣고 깨는 일은 일 년에 한두 번 있기는 하지만, 알람을 켜두는 것은 마지막 안전장치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오랜 습관처럼 눈을 뜨고 가을이니까 춥지 않게 겉옷을 입고 풍요로운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기 위해 신발을 신습니다. 이 시간은 이미 출근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겐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만큼 늦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젖은 머리를 말리고 머리카락 끝에 물기는 말랐지만 정수리 부분은 젖어있을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걷습니다.   


   

낙엽이 지는 풍경을 본지는 조금 오래된 일상이기도 합니다. 숫자를 셀 수 없는 나뭇잎들이 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이 소리를 어디선가 들은듯하다고 말이죠. 며칠째 이 소리를 같은 장면으로 들으며 떠올려도 같은 소리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낙엽은 한꺼번에 집니다. 진다는 표현보다 한 잎 한 잎 떨어지며 바닥에 몸을 부딪히는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가끔 걸음을 멈추고 하염없이 듣습니다. 이 소리를 녹음해서 듣는다면 기억 속의 소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녹음을 하는 일이 번거롭게 느껴지는 것은 소리를 찾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의미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런 의지는 처음부터 없는지도 모릅니다. 의지도 없이 기억을 떠올리는 일은 그 기억이 무의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찾아내도 쓸모없는 기억들 말이죠.     


마지막 키스가 언제였는지 기억하고 있나요?     


https://www.youtube.com/watch?v=PjtJkBUVFVY


건물 밖을 나서면 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무의한 기억이 떠올라 다시 한번 그 기억이 맞는지 기억을 더듬어보았습니다.  한꺼번에 떨어지는 낙엽들이 마구 쏟아져 구르고 잠시 시간이 멈춘 듯이 암묵의 상태가 유지됩니다.


낙엽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떨어지는 궤적을 예상할 수 없게 이리저리 바람에 굳은 근육을 휘날리며 바닥에 몸이 부딪혀 탁과 촙 사이의 경계 소리를 내며 떨어집니다.      


경험했던 첫 키스. 누군가라도 함께 나눴을 첫 번째 키스들.

몸을 주체할 수 없는 격렬해지기 전의 키스.     



이제 막 입술이 닿고, 서로의 입술이 서서히 벌어지며, 다가올 격랑의 호흡을 위해 떨어져 무의식적으로 서로가 나눈 첫 호흡.     


그때 나는 소리였다는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낙엽 하나가 홀로 기억을 흔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더 듣고 싶어 기다렸지만 그렇게 한 잎이 떨어지는 일을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거리에 서서 기다렸습니다.      


기억이 떠 오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기억을 환대하며 물을 끓이고 커피를 탑니다. 향을 피워 올립니다. 같은 일상이지만 이 순간은, 다른 커피의 체온과 향이 느껴집니다.     


무의 한 목요일 아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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