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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적 Nov 13. 2024

웃어 그러면.

나비는 날아오를 때 접은 날개를.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 우리 키는 같았었죠. 아니 키만 같았다는 말이 옳겠네요. 소년은 다리가 길었고 팔도 한 뼘은 더 길었던 것 같아요 같이 서서 사진을 찍으면 혼자서 만 다른 필터로 사진을 찍은 듯 비율이 안 맞았죠. 작은 얼굴에 긴 팔과 다리. 우린 그를 김나비라고 불렀어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날개로 허공을 내저으며 날아오를 것 같았거든요.     


살고 있던 소도시는 너무나 볼품없었고 미술 학원 하나가 겨우 들어 선 동네였어요. 상상력을 가르치던 원장은 가지고 있지 않은 걸 달라고 했었고 그리고 싶었던 건 다른 것이었는데  바닷속 상상화를 그리다 바닥에 놓여있던 물통을 발로 걷어 차고 그만두었죠.

물론 집으로 돌아와 무례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등짝을 호되게 맞았지만 절대 학원에 다시 가지 않겠다고 대들었던 기억이 나곤 했어요     


그런 동네에서 소년은 발레를 꿈꿨죠 딱 한번 TV에서 보았던 공연이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어요. 두 시간을 넘게 전철을 타고 삼 년을 다니며 소년의 다리는 더 길어졌고 탄력이 느껴졌어요 소년이 무의식적으로 발뒤꿈치를 한껏 들고 서 있으면 근육이 붙은 대나무처럼 바람 속에도 꺾이지 않을 것 같아 보였어요.     

소년의 세상에 가보고 싶었어요. 무엇이 소년 안에 저렇게 가득 차 있었는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어요. 다니는 학원에 가보고 싶다고 한참을 망설이다 먼저 말을 꺼냈었죠. 흔쾌히 친구의 학원에 따라갔었어요 우린 가는 동안 별말이 없었어요. 구석진 자리에 앉아 조용히 구경을 했죠. 삐쩍 마르고 도도해 보이는 원장은 나무 막대기 두 개로 박자를 맞추며 날아오르는, 발끝으로 서는, 수 없이 돌고 있는 나비에게 짜증스럽게 소리를 질렀어요.     


표정에 신경 써 표정, 표정, 표정, 표정, 표정, 표정, 표정     


그녀의 목소리를 지금도 기억나요 그토록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쓰지 않고 신경질적이며 메마른 목소리를 지금도 들어 본 적이 없어요. 날아오르던 소년도 기진맥진해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 쉬었죠. 소년은 텅 빈 연습실에서 마른걸레질까지 하고 옷을 갈아입을 동안 기다렸다가  집으로 돌아왔어요.     


표정을 어쩌란 거야 도대체?     


소년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어요.     

힘든 표정 하지 말라고 한순간도.....     


힘든 표정 지으면 스포츠가 되는 거라고     


나는 발 레 리 노

라고.     



나비는 계속 인대가 찢겼었죠 씻고 나온 그를 보면 허벅지 안쪽과 종아리는 시퍼런 실금들로 곧 무너질 건축물 같았어요 발등과 발가락은 굳은살이 뒤덮인 지 오래되었죠. 가끔 만져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만큼.     


나비는 미세하게 다리를 절기 시작했죠     

나비는 진통제를 입안에 넣고 씹어 먹었어요.     


묻지도 못했지만 돌연 소년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정수기 물통 배달을 하기 시작했었죠. 돌연 시작했던 것처럼 홀연히 사라졌어요.     


그 후로 나비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나비는 힘겨운 일에 놓여있을 때마다      



표정에 신경 써 표정, 표정, 표정 표정     


나지막이 속삭였죠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이잖아           


힘든 표정 짓지 마 그러면.....     


나는 소년보다 사악해서

웃지도 않고 글을 쓰는 중이에요.     


그건 읽는 사람의 몫이기도 하거든요.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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