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하는 일을 잘하지 못하지만.
듣는 일을 잘하는 편입니다.
가끔 통화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40대 중반에 교외 전원주택에 살고 있는데 오후에 아들 반 담임에게 전화가 와서 열이 나니 조퇴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아이를 데리러 갔다고 합니다.
체험 학습을 다녀온 뒤 간간이 기침을 했다고 합니다. 동네에 하나 있던 소화과도 문을 닫고 나자 내과에서 받아온 약은 효과가 없는지 증상은 심해져 갔다고 합니다. 아이를 데리고 와 이마를 짚어보니 불덩이였다고 합니다. 일단 해열제를 먹이고 재웠다고 합니다.
12살짜리 아들은 아직 지나치게 천진하다고 합니다. 집에 오면 호작질-경상도 사투리로 쓸데없는 장난을 가리키는 말-하는 것을 좋아라 한다고 합니다. 화분에 돌덩이를 쌓아 쓰러지지 않게 만든 다음 돋보기를 꽂아두고 태양 빛을 모아 나무토막을 태운다거나, 사슴벌레 젤리를 까 땅속에 파묻어 개미들을 관찰한다던가 그런 것들을 좋아합니다.
호기심은 너무나 좋은 것이고 최대한 입을 떼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지만 쉽지 않다고 합니다. 한 번은 하리보 곰 젤리를 접시에 담아
전자레인지를 돌리면 어떻게 되는지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액체로 변한 젤리를 보고 뜨거운 접시를 만지는 바람에 화상을 입은 적도 있습니다. 놀라서 병원에 갔고 며칠 붕대를 감고 있어야만 했다고도 했습니다.
때마침 딸아이도 목이 따끔거린다고 하여 같이 병원에 가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사는 곳이 관광지다 보니 금요일엔 차를 끌고 움직였다가는 서울에서 교외로 빠지는 차들과 섞여 몇 시간의 교통 정체를 겪어야 해서 전철로 이동해 병원에 도착했는데 39명 가까이 대기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근처 카페에 가서 기다리는데 제대로 닫아두지 않은 텀블러에 물에 쏟아져 가방과 안에 있던 지갑 등이 축축하게 젖어 버렸다고 합니다. 대기 시간이 길어진 것에 짜증이 난 상태였는데 늘 덤벙대는 아들을 보니 화가 났다고 합니다. 아이에게 뾰족한 말들을 쏟아붓고 화장실로 가 가방에 쏟아진 물을 처리하고 손수건으로 닦아내 대충 정리하며 화를 참느라 속을 가라앉히느라 혼났다고 했습니다.
돌아와 보니 아이들 기죽은 모습을 보니 미안하기도 하였고 전철을 타고 되돌아올 때 다행히 아들의 피곤한 모습을 보고 누군가 자릴 양보해 줬고 연이어 자리가 나자 서로 졸린다며 가운데 앉으라 투정을 부려 딸과 자리를 바꾼 뒤 두 아이가 양어깨에 기대고 잠이 들어버렸다고 했어요. 돌아와
“아까는 사람도 많고 오래 기다려야 해서 엄마가 좀 예민했어. 물 쏟을 수 있는 건데 너무 심하게 화낸 것 같아 미안해!”
“아니야, 나도 이제 물병 꼭 확인하고 잘 잠글게”
아이들을 안아주었다고. 아이를 키우며 하루에도 몇 번씩 인간성이 밑바닥까지 내려간다고. 발에 밟히는 인간성을 마주하며 후회하고 반성한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바닥에 깔린 인간성을 끌어올리려 애쓰고 있다고
잠자는 아이들의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었다고 합니다.
기나긴 얘기를 다 듣고 난 뒤 한참을 머뭇거리며 지친 친구를 위로하려 했습니다.
기나긴 하루를 보내느라 애썼구나. 내 친구 중에 딸을 간절하게 원하던 아빠 덕에 오빠만 다섯 있는 집에서 태어난 여자아이가 있어 그 아이 말에 의하면 자긴 그 틈에서 살아남는 것에만 집중했다고 했어 결혼은 싫고 아이는 절대로라고 늘 말하고 다녔었지. 근데 그 아이가 결혼 전 임신하고 결혼 후에 매년 한 명씩 사내아이 셋을 나은 거야….
그 아이가 하는 말이
모성애는…. 자식에게 관련된 감정이 아니더래 그건 지나면 지날수록 엄마에 관한 감정이라는 거지 그때 엄마는 어찌 참았을까 그땐 정말 대단했네 나는 아직 멀었다고 하며 엄마가 떠오르더란 거야.
더 많이 힘들지 몰라도 네 엄마 생각하며 잘 버텨봐
오늘 고생 많았어 훌륭해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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