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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적 Nov 11. 2024

가을 달빛이

밤의 마찰장력을 풀어요.

어릴 적 친구 무리 중에 늘 조용하고 있는 듯 없는 듯한 친구가 있었어요. 왜 그런 친구들 있잖아요? 가만히 웃으며 별 말없이 자리를 지키다가 자리가 파하고 나면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는 친구. 돌이켜 생각해 보면 왜 그 친구를 기억하지 못한 걸까 미안해지는 친구 말이죠.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그런 친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린 한 동네 사는 친구였어요. 그리고 초등학생이 되자 우리는 냉장고 속 한쪽에 있던 물병 같았어요. 우리는 대부분 델*트 훼미리 오렌지 주스 병처럼 하고 다녔죠. 라벨은 깨끗이 떼어냈지만 손잡는 부분이 선명했고 엠보싱처리된 유리 표면도 비슷했죠.     


그리고 여름이 되자 그 유리병에 우린 호기심이라는 물을 넘치도록 채워 넣고 뚜껑을 닫아 흐르지 않게 돌아다녔어요. 가끔 뚜껑을 열면 경쾌한 소리가 났던 게 기억나네요.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있는 듯 없는 듯하던 친구의 생일파티는 밤 8시에 하기로 했어요. 토요일이었고 늦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은 다 참석하였고 우린 차에 실려 동네에 단 한 군데 있는 실외 수영장에 도착했어요.      


친구 아버지는 말소리를 크게 내지 말 것과 샤워 시설을 쓸 수 없다는 말 대신 집에 가면 꼭 깨끗이 씻을 것. 그리고 조명을 사용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커다란 철문의 쇠사슬을 풀러 문을 열어주셨죠. 우리는 깜깜한 복도를 지나 샤워장의 음산함을 풀고 수영장에 도착했어요.


낮에만 왔던 그래서 눈부시기만 했던 수영장은 숲 속의 나무들의 커다란 잔영들과 검은 하늘과 그곳에 은단처럼 박혀있던 별들이 수영장에 고스란히 잔잔한 물결 위에 놓여있었죠.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우리는 옷을 벗어 젖혔어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수영장으로 들어가 밤의 별들을 흩어 놓았고 숲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물속을 헤엄치고 잠수해서 수영장을 휩쓸었죠.


웃음이 터져 나오면 손으로 입을 막았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으면 물속깊이 들어가 한동안 나오지 않았어요 조용히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저마다의 길을 나선 여행자처럼 물결을 일으켜 수영장을 돌아다녔어요. 물 위에 누워 하늘의 별들을 바라다보며 수영을 했어요. 그저 떠 있었어요.     

6학년 여름방학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침묵의 수영은 비밀리에 진행되었죠. 우리는 표백제 냄새를 풀풀 풍기며 집으로 돌아갔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비밀이 생겼어요.     


아무도 없는 밤의 야외 수영장      

물결 소리만 고요하였고 그렇게 고함치던 아이들은 수영이 끝나고 나면 물결을 헤친 만큼 조금씩 자라났죠. 그렇게 자라게 한 건 한 시간 남짓한 침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서로를 침묵의 수영가 라고 부릅니다.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밤 산책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현관문을 닫으며 문득 표백제 냄새를 맡았습니다.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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