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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적 Nov 08. 2024

신의 가방은

나의 집일지도 모릅니다.

아직 남아있는 밤을 창밖으로 바라다보며 눈을 뜹니다. 비교적 밤의 불빛들에 유난히 예민해서 어둠 속의 가녀린 빛을 뿌리치지 못합니다.


갑자기 시끄러운 벨 소리가 울립니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였고 소화전에서 나는 소리 같았습니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불을 켜고 집안을 둘러보았습니다. 모란은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소리에 몸을 웅크리고 머리를 파묻고 있습니다.

모란을 손으로 안고 계단을 내려서다 모란이 팔을 튕기듯 빠져나갑니다. 서둘러 고양이 집을 찾아 지퍼를 열고 모란을 찾습니다. 소화전 소리는 계속 들려오고 모란을 찾으며 모란을 부르며 집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닙니다.


소화전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쓰레기봉투와 종이 가방을 쌓아 놓은 장소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집안의 모든 불이 꺼집니다.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불을 비춰봅니다. 모란의 눈이 불빛에 반사되어 더 빛이 납니다. 손을 뻗자 더 깊숙이 숨어버립니다.


발을 잡자 손가락을 물고 할퀴느라 손등에서 금방 피가 배어 나옵니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가방에 목도리를 깔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란을 조심히 넣습니다. 가방을 앞으로 메고 현관문을 여는데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가방을 내려두고 문을 몸으로 밀어냅니다. 쿵쿵 쿵


눈을 뜹니다. 침대에서 떨어진 내가 이제 막 울리기 시작한 알람을 확인합니다. 이 시간에 어떻게 울리게 된 건지 알 수 없습니다.


이마에 손에 등줄기에 땀이 흥건합니다. 모란이 곁에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차갑고 축축한 코를 손등에 비벼 댑니다.


잠시 땀을 식히며 너무나 생생한 꿈에 관해 그 소화전에서 나오는 타격음과 흔들리던 사물들과 갑자기 뒤덮어 쓴 어둠과 모란을 찾던 나와 열리지 않던 문을 떠올립니다.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고 산책을 나옵니다. 오늘따라 더 부드러운 손길로 자신을 쓰다듬던 이유를 모란은 모를 것입니다.


모란의 가방을 다시 꺼내 먼지를 물 티슈로 닦아냅니다. 모란의 가방이라고 불리는 것은 모란의 외출용 집입니다.

모란은 아마도 예방접종을 하러 갈 때 그리고 중성화수술을 하러 갈 때 들어가 봤던 그다지 좋은 기억이 없는 장소일지도 모릅니다.


꿈속에선 아주 순전한 눈빛으로 빠져나올 기색도 없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고 있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씻고 나와 거실을 둘러봅니다.

이 집은 신의 커다란 가방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 집에서 울고 괴로워하고 간혹 이 가방 안에서 나가지도 않으며 때론 외출해서 돌아오곤 합니다.



내가 살던 곳에서 무엇을 챙겨 나올 건가요?


나는 이곳에 챙길 필요 없는 것들을 얼마나 많이 쌓아두고 있는 걸까요.


때론 꿈이 질문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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