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층구조의 집에서 사는 저는 침대에서 일어나면 덮고 있던 이불을 접어 침대 위에 놓고 잠시 나무계단 아래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내려섭니다. 물론 모란이 다음발을 내디딜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 물러서지 않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 허리를 숙여 모란을 들어 올려 가만히 나무계단에 같이 앉아 있습니다. 내려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거실에 불을 켭니다.
지난 새벽 길가에 세워둔 자동차 한 대가 계속해서 경고음을 울렸습니다. 잠시 경고음을 멈췄다가 다시 더 큰 소리로 경고음을 내는 소리를 듣고 다음역에서 내릴 준비를 하는 사람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수면역밖으로 내릴 뻔했다가 다시 손잡이를 잡고 서서 잠이 들었습니다.
천장이 높아서 조명을 켜도 밝기는 한정적입니다. 간혹 불을 켜둔 채로 출근하는 일이 잦아지자 출근하기 전 마지막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며 불을 끄곤 합니다.
스위치를 켜려다 잠시 망설입니다. 오랜만에 맑은 하늘이 눈 안으로 가득히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밖으로 나와서 하늘을 바라다봅니다.
핸드폰을 꺼내 제가 가진 하늘의 한 켠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산책을 다녀오며 길가의 낙엽도 몇 장의 사진을 찍고 싶어 졌습니다.
요즈음은 커다란 빗자루로 길을 쓸고 있는 건물을 거의 볼 수 없습니다. 다들 손잡이가 달린 커다란 에어건으로 길가의 낙엽을 길밖으로 내쫓느라 새벽이면 날카로운 바람소리를 피해 작은 골목길로 산책을 다니고 있습니다.
뚜렷한 구름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한동안 경계를 알 수 없는 구름에 휩싸여 포장지를 풀지 않는 선물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지나는 길에 깃털이 젖어 있는 꼬질꼬질한 목덜미를 지닌 비둘기를 보았습니다. 햇살을 보며 행복해하는 건 식물에 가까운 습성입니다.
누군가가 만지는 걸 원치 않습니다.라고 확고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만지지 않습니다. 그리곤 가늘고 긴 손가락을 보면 만져지고 싶다는 생각을 간혹 하곤 합니다.
만져지고 싶은 욕망은 수동적인 욕망이어서 욕망이라고 부르기 망설여 지곤 합니다.
모든 식물은 운동 능력이 있는데, 일반적인 식물의 운동을 육안으로 체감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주야 간격 사이에 일어나는 식물의 운동을 수면운동이라고 하는데 미모사는 낮에는 잎을 벌리고, 밤이면 잎맥을 중심으로 좌우로 접히는 수면운동을 하기도 한다. 미모사가 잎을 움츠리는 것은 일종의 방어기제인데, 자극을 받은 미모사가 잎을 접으면 멀쩡한 잎이 사라지고 반으로 접힌 잎이 나타나기에 천적들이 이것만 보고 먹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등을 돌리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자극을 받으면 물관에 있는 물을 빼서 잎사귀를 움직인다.
‘사람의 영혼을 가진 꽃'이라는 의미를 지닌 ‘유추프라카치아’는 아프리카 깊은 밀림에서 공기 중에 있는 소량의 물과 햇빛으로만 사는 음지 식물입니다.
이 꽃은 생물체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고 합니다. 이 식물을 연구한 학자가 있었는데, 이 식물에 대해 몇십 년을 연구하고 또 그만큼 많이 시들어 죽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결국 학자는 이 식물이 어제 건드렸던 그 사람이 내일도 모레도 계속해서 건드려주면 죽지 않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