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적적 Nov 15. 2024

낙엽은 생기가 돕니다.

가을비 새벽.

밤으로부터 비가 내렸습니다. 밤새 내린 빗소리에 잠이 들었다 잠시 비가 멈추면 설핏 잠이 깨곤 하였습니다. 금요일 아침이면 다른 날보다 일찍 잠에서 깨고 더 이상 잠들지 못하는 신비로운 요일은 이미 잠들기를 포기한 지 오래된 일입니다.


새벽에 눈을 뜨고 모란과 같이 창가에 붙어 앉아 뒷모습을 내보이며 비가 내리는 풍경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모란은 눈을 뜨자 사료를 몇 알 먹고 물을 끓여 커피를 머그잔 3/4만큼 커피를 타서 창가에 모입니다. 마치 일요일 아침 약속 장소에 모인 산악회 회원들처럼요.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에 김이 피어오르는 종이컵 하나씩 들고 차가운 공기 속에 옷깃을 여미는 그런 사람들 말이죠. 물론 고양이는 옷깃을 여미는 대신 목덜미를 까슬까슬한 혀로 핥아 부드럽게 털을 고릅니다.


우산을 쓰라는 빗소리를 듣고 긴 우산을 들고 거리로 나섭니다. 걷는 길마다 물웅덩이들이 생겨나 있습니다. 기억으론 단수가 된다는 방송을 하고 다음 날이면 급수차가 사거리에 도착합니다.      

그때는 언제까지 물이 나온다는 기약이 없었습니다. 우린 모두 양동이들을 모두 꺼내 물을 받고 아이들은 바가지마다 물을 받아 조심조심 걸으며 부엌마다 마루에 화장실에 물을 받아 놓았어요.

비라도 오면 빗물을 받아 화단이나 집으로 들어오는 계단 청소를 하였습니다.


비가 그쳐가고 있습니다. 낙엽의 이름값을 하느라 아직 떨어지지 않은 나뭇잎들을 바라다보며 이번 계절에서 마지막 물 한 모금을 마시며 길가에 단단히 붙여 놓은 것처럼 떼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비가 오는 금요일이 좋습니다.      

살아있는 것은 좀처럼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지난해에도 낙엽의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압니다. 아마도 그 이전 그리고 태어나기 전에도 그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비 내리는 새벽에 밖으로 나간 이유는 이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서였습니다. 물에 잠긴 낙엽들. 이제 막 떨어진 낙엽들은 낙엽이 된 줄도 모르고 떨어진 빗물을 마시면 생기가 돌고 있습니다. 마치 가지 끝에 매달린 것처럼    

        

아마도 누군가는 이사 온 집에서 처음으로 맞는 비 오는 날일 테니 눅눅해진 집안 공기나 어두워진 거실의 불을 켜며 아침을 열지도 모릅니다. 창가로 다가가 처음 보는 비 오는 풍경에 취해 물을 끓이고 이제 막 깨어난 아이의 따스한 체온을 안으며 혹은 비 오는 날의 통증을 다스리느라 천천히 발길을 옮길지도 모를 일입니다.


늘 그렇지만 금요일은 참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오랜만인 오늘이….

이전 08화 무용한 것을 사랑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