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한편으로 나오셨습니다.
어제와는 차원이 다른 아침입니다.
11월 중순이므로 이런 아침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이불을 돌돌 말고 있다가 이불을 빼앗긴 것처럼 서운합니다. 양말을 꺼내 신고 좀 더 두꺼운 옷을 고르고 그 위에 더 두꺼운 외투를 고릅니다. 아직 밖은 밭에 심은 배추처럼 푸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겉 잎이 한 겹 씩 뜯겨 나가고 노랗게 물기 많고 속잎이 드러날 것입니다. 달콤하기까지 한 가을 햇살이 고맙게도 건널목 앞은 햇살이 풍요롭기만 합니다. 빨간불을 기다리며 주머니에 넣고 있던 손을 꺼내 강아지 모양의 그림자를 만듭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햇살을 마구 먹습니다. 노란 배춧잎 같은 햇살이 아삭거리며 마른 개의 입속으로 사라집니다.
어머니는 격주로 오십니다. 고양이 모란이 너무 보고 싶어 오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냉장고를 채우시며 먼저 먹어야 할 음식과 천천히 먹어도 되는 음식에 관해 설명하십니다. 지난여름 서큘레이터를 보냈으니 네 여동생이 조립해 줄 거야 그대로 한쪽에 두거라.
며칠 전 현관 옆에 커다란 박스가 놓여있었습니다. 집 주소를 확인하고 받는 사람 이름을 확인합니다.
철결함이 몸에 밴 늙은 여동생은 감기로 얼굴이 더 창백해진 채 집안으로 입성하였습니다. 들어서자마자 닫힌 문을 열고 집안의 공기를 밖으로 억지로 떠다밉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추운 거야 움직이면 무척 더운 날씨야 서큘레이터를 켜다오 저렇게 더럽게 사는데 감기도 안 걸리는 거 봐 워낙 병균을 많이 먹어서 웬만한 균으로는….
잠시 외출했더니 모든 뒤처리를 하고 전열기 한 대가 놓여있습니다.
그녀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서큘레이터와 전열기가 함께 놓인 거실 한쪽을 바라다봅니다. 한여름과 한겨울이 함께 거실에 놓여있습니다. 한여름 애쓰던 바람과 이제 한동안 열기를 내뿜느라 고생할 전열기가 서로를 바라보지 않은 채 놓여있습니다. 한동안 어떤 것도 전원이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는 너 같은 아들을 낳지 않을 거라는 늙으신 어머니는 여름 걱정과 겨울 걱정으로 잔소리를 하십니다. 세상에서 나에게 그토록 모질게 잔소리를 할 사람은 신과 어머니뿐일지도 모릅니다.
이 낮은 기온에 햇살 한 줌을 받아먹는 아침입니다.
고맙고 따스하며 풍경이 내비치는 한지 같은 볕을.
사진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