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는 검은 식탁에서

쫓아내지도 잡지도 않는 곳에서.

by 적적

매일 눈을 뜨는 일을 생각해 봅니다. 잠 못 드는 밤의 고지를 탈환하고 불면을 유지하다가 순식간에 잠의 포로가 되는 일을 매일 반복합니다.

수용소의 아침은 눈을 뜨면 이제 전원을 켠 전기히터처럼 찬바람이 위-잉 하고 나오다가 설정해 둔 온도를 향해 가파르게 열기를 더합니다.


이불 밖의 체온은 가늘고 무척 차가운 손길을 지닌 여자 같은데…. 만져질 때마다 발가락에 힘이 들어가는데…. 그렇게 일어나 양말을 신고 가방을 메듯 옷을 걸치고 가로등도 꺼지지 않는 거리를 향해 집을 떠나는 일로 아침을 시작합니다.

길가 보도블록 턱에 앉은 사내가 있습니다. 뒷모습이 무척 지쳐 보이는 사내입니다. 사내의 팔이 조심스럽게 움직입니다. 그의 팔꿈치가 해져 있습니다.


오늘 날씨도 흐리다고 합니다. 맑을 기색이 보이지 않습니다. 3일째 햇살이 드러나지 않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가 머물고 있는 하늘은 그렇습니다.


대로변을 지나 정원이 있는 집들을 지나며 꽃이 핀 나무를 찾아봅니다. 그것은 무례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예의가 아닐 법도 합니다.


자존심 강하고 예의가 바른 나무들이 자리는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얼마큼 걸었는지 가늠할 순 없지만, 되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나왔던 길을 건너 지나왔던 길을 바라다보며 걷습니다. 손을 내놓고 걸으며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은행에 갈 일은 이제 좀처럼 없습니다. 근래 들어 은행에 가본 것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번호표를 뽑고 상담 의자에 앉으면 은행원이 입고 있던 흰 블라우스같이 흐린 하늘입니다. 그녀처럼 환히 웃지는 않지만 말이죠.


이러다 햇살이 조금 나올지도 모르는 아침입니다.


사라진 그림자를 구경하러 사내가 앉아있던 보도블록 쪽으로 갑니다.

앉아있기 조금은 부담스러웠을 그 자리에 사내가 이유를 남겨두었습니다.

배가 고팠을 겁니다. 편의점에 들러 허기를 골랐을 것입니다.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시간 동안 사지 않아도 되는 물건들을 바라다보며 만지작거렸을지도 모르죠. 실내에서 나오는 트로트 가사를 따라 부르며 음료수는 고르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띵 하며 이곳을 떠나라는 경고음을 듣고 편의점을 나섰을 것입니다. 어느 곳도 몸을 기댈 곳을 찾을 수 없던 사내가 보도블록 끝에 걸터앉아 도시락 뚜껑을 열고 반찬 하나를 입에 넣습니다. 모여있던 배고픔이 쓸쓸한 식탁 위에 흩어지며 뜨거운 반찬들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며 꾸역꾸역 밥을 먹습니다. 밥알들이 하나하나 씹히고 찬 공기가 입안으로 스며들며 음식들은 삽시간에 식어갔을 것입니다.


때로 음식은 옷입니다


가지런히 남긴 음식을 바닥에 내려두고 입가를 휴지로 정갈히 닦은 다음 라이터를 힘차게 흔들어 담배를 피웠을 것입니다. 조금 더 햇살이 쏟아지면 좋겠습니다. 기온이 올랐으면...


저렇게 마른땅은


어 디 서 찾아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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