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났던 여자들은 대부분 수족냉증이 있었어요. 겨울이면 더 차가운 손에 깍지를 끼고 걸어야 했죠. 물론 어떤 날엔 뜨거운 캔커피를 사서 잠시 그녀의 손에 쥐여주곤 했어요. 그런 이유는 차가워진 손을 데우기엔 체온이 턱없이 부족하기도 하였지만 차가운 손을 미안하지 않게 내밀기를 바랐던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죠.
이상한 것은 그 캔커피를 마신 기억은 한 번도 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며칠째 온종일 무표정으로 지냈다는 걸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짧은 콧수염과 지팡이를 들고 익살스러운 연기를 보여준 찰리 채플린은 무성 영화의 아니 모든 영화 속에 살아있는 전설적인 스타였습니다. 그와 쌍벽을 이루던 나의 무비스타가 있었습니다.
그 배우의 이름은 버스터키튼 '위대한 무표정'이라 불렸던 사내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위험한 연기를 해왔던 그는 그 당시 대마술사로 불리던 해리 후디니가 엄청나게 튼튼한 아이라며 버스터란 별명을 지어주었고 훗날 그는 버스터키튼 이란 이름으로 영화감독, 배우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성인이 되자 그는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각종 스턴트 연기로 선보였습니다 뭐 물론 그 당시에도 지금의 컴퓨터그래픽처럼 무대와 카메라를 이용한 트릭에 도움을 받아 스턴트 장면들을 촬영하고 했지만 제대로 된 안전 장비 하나 없이 맨몸으로 이런 장면들을 연기한다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갈비뼈 목뼈가 골절되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아무런 표정 없이 연기를 해야만 사람들이 더 재밌어야 한다는 이유로 무표정을 지켜나가며 1920년대 최고의 영화배우자 감독으로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1951년 TV가 대중들에게 전파되기 시작하자 그는 자신이 완벽하게 몰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백발이 된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영상들을 제작하며 사람들에게 존재감을 뽐냈습니다. 그렇게 7년 만인 1965년 베이스 영화제에 초청받은 그는 단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는데 이런 말을 남겼죠
박수 소리가 멋지군요 하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그는 스턴트의 대가였으며 영화를 사랑하는, 혹은 한순간 인기 있던 몰락한 영화배우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이듬해 스턴트의 대가였던 그가 눈을 감습니다.
그의 유산을 받은 사내를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실 거예요.
1981년 헐리우드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게 된 홍콩 출신의 젊은 영화배우에게 키튼의 영화를 추천했고 청년은 버스터키튼을 롤 모델로 코미디가 섞인 액션을 선보이게 되죠
홍콩으로 돌아간 젊은 영화 배우는 위험한 스턴트를 무술과 결합해 지난해까지 영화를 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