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사람.

그 사람이 널 살게 하는 거 아닐까.

by 적적

어릴 적 여자 친구는 어린 나이에 덜컥 임신해서 남자와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아이를 낳고 같이 살게 되었어. 시댁 식구는 왕래도 없었고 친구 남편은 매번 밤늦게 퇴근해서 24시간 내내 아이를 보며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고 했어.


그냥 아이 낳고 아이를 키우는 게 전부였데.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누나가 갑자기 집을 방문했더래 집안은 온통 어지럽혀져 있고 빨래며 아기용품들로 난장판인데 그냥 벨을 누르고 들어오셨데. 그리곤 그녀에게 아기를 빼앗듯이 받아 들고


들어가서 한숨 자고 나오라고 하더래. 웃긴 건 예전 상견례 때 잠깐 본 사이였는데 그냥 맘이 편안해지고 잠을 자고 싶단 생각에 방으로 들어가 족히 3시간을 자고 일어났더니 남편을 나무라는 시누이 목소리가 들리더래 너 저 어린아이 데려다 집에 가두고 젖병 씻는 일이나 고작 하면서 얼굴이 곧 쓰러질 것 같은데 눈에 안 보이니 라고 소릴 치고 있더래.

방문을 열고 나오는데 친구를 보며 환히 웃더래 그 표정에 친정엄마가 떠올랐던 것도 같았데 눈치 없는 거 알지? 잘 가르쳐 나쁜 아이는 아니야 몰라서 그런 거니까 아이는 잠들어 있고 저녁 먹고 가시라고 하니 나 가정주부야 얼른 집에 가서 나도 애들 챙겨야 해 이거 받아 고기 사 먹어 빨리 오느라 아무것도 들고 오질 못했네.

가끔 들를게.


친구는 그날의 시누이에게 다시 전화할까 망설였는데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난 후에 시누이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항암 치료를 하는 동안 남편한테 얘기하고 시누이가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곁에 있었다고 해


그녀들은 서로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도 들은 적도 없었데. 그저 다시 들를게.


그 빛나는 한순간 고작 5시간 동안 같이 있던 한 사람이 만들어준 마음의 그늘로 힘들면 고개 숙이고 가만히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마워하는 마음만으로 다시 살아야겠다는 힘이 나는 사람 말아야.


후회되는 건 좀 더 빨리 전화를 하지 못했던 것.


나도 그런 사람이 있었나 하고 생각하는 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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