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부드럽고 유연한 등뼈를 지니고
인간은 쓸쓸할 때가 제일 제정신 같아 그래서 밤이 더 제정신 같아 어려서 교회 다닐 때 기도문 적어내는 게 있었는데 애들이 쓴 걸 보고 이런 걸 왜 기도하지 성적, 원하는 학교, 교우관계 고작 이런 걸 기도한다고 신한테 신인데..... 난 궁금한 건 하나밖에 없었어 나 뭐예요? 나 여기 왜 있어요? 91년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고 50년 후면 존재하지 않을 건데 이전에도 존재했고 이후에도 천재 할 것 같은 느낌 내가 영원할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의 시달리면서도 마음이 어디 한 군데도 한 번도 안착한 적이 없어 이불속에서도 불안하고 사람들 속에서도 불안하고 나는 왜 딴 애들처럼 해맑게 웃지 못할까 난 왜 늘 슬플까? 왜 가슴이 뛸까? 왜 다 재미없을까? 인간은 다 허수아비 같아 자기가 진짜 뭔지 모르면서 그냥 연기하며 사는 허수아비 어떻게 보면 건강하게 잘 산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모든 질문을 잠재워두기로 합의한 사람일지도. 인생은 이런 거야라고 어떤 거짓말에 합의한 사람들. 난 합의 안 해 죽어서 가는 천국 따위 필요 없어 살아서 천국을 볼 거야 나의 해방일지 염미정 독백 中
컴컴한 일요일 새벽 산책은 폭이 넓고 수심이 발목까지 오는 개울을 건너는 것 같았지, 난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앞에 놓인 돌덩이에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뎌 뒷발의 균형과 눈에 띄는 돌덩이를 고르는 일에 집중했어. 점점 앞으로 가는 속도가 빨라지고 속도가 빨라진다는 건 물속에 발이 빠질 가능성을 높이는 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어.
방앗간에 가면 흰 쌀을 씻습니다. 너무 울어서 눈가가 퉁퉁 부어오른 계집아이 눈가처럼 불립니다. 기계에서 수없이 빻아 시루에 담아둡니다. 백설기처럼 찌고 나면 틀에 넣고 나무 주걱으로 기계 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가만히 기다리면 서로의 끈적한 점성으로 쌀이었던 기억은 모두 사라져 버립니다. 물속으로 잠영을 하는 가래떡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떡이 나오는 순간이 그리고 물기 빠지고 잘려 있는 걸 보면 눈물이 났어 어린 마음에 왜 그게 그렇게 우울했는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엄마가 그랬다.
작고 뒤통수가 밤톨 같은 아이는 물이 반쯤 채워진 빨간 플라스틱 다라 안으로 한없이 가위로 잘려 나오는 떡을 보며 울었다고 왜 우느냐고 물어도 대답도 없이 울고만 있었다고 그해 겨울 냉동실 안에 아무렇게나 구겨진 가래떡을 녹이려고 꺼내놓으면 하염없이 차가운 떡을 어루만지며 울상이 되었다고.
엄마는 내가 이상한 아이를 낳은 건 아닌지 떡을 만지는 아이를 조용히 바라보았다고
뭐였을까? 이런 마음은 뭐지라고 혼자 서운하고 속상해했던 그 맘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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