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의 서커스
귀댁의 고양이는 안녕하신지요?
밤새 눈이 내립니다. 어떤 눈은 눈송이가 너무 커서 창에 부딪히며 작은 마찰음을 낼 정도로 폭설이 내립니다. 아직도 창가로 눈이 내립니다. 밤새 모란은 눈이 오는 최면에 걸려 창가에 달라붙어 눈을 잡으려고 한없이 뛰어오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눈에 매료된 고양이를 바라보다가 옷을 단단히 입고 밖으로 나갑니다. 산책은 목적이 없어야 합니다. 안과 밖을 모르는 고양이는 눈을 잡고 이제 겨우 안과 밖을 구분할 줄 아는 인간은 눈을 뒤집어쓰고 집 안으로 들어옵니다.
고양이 모란이 옆으로 걷습니다. 꼬리털을 한껏 부풀리고 눈이 뚝뚝 떨어지는 사람에게 다가서지 못한 채 옆으로 걸으며 다가왔다 빠르게 멀어져 갑니다.
나는 다시 콧등과 목덜미 그리고 턱밑을 쓰다듬어줍니다. 헤어졌던 시간은 급속으로 위안이 됩니다.
평온을 찾은 모란은 사료를 몇 알 오독거리며 먹고 이리저리 마구 뛰어다니다가 제 곁에 앉아 손등을 가만히 핥고 냄새를 맡습니다. 무릎에 앉아서 고개를 들고 가만히 바라다봅니다.
며칠 동안 어느 봄날처럼만 쌀쌀했죠. 그리고 어젠 무척 추웠어요. 무척이란 말을 쓰기에도 턱없이 부족할 만큼
사건이나 사고 게다가 도둑 없는 마을로 10년을 유지해 온 어느 시골 마을의 파출소로 발령받은 순경 같은 겨울이었습니다.
친구와 통화 중 다래끼가 날 것 같다고 해서 난 태어나서 다래끼가 한반도 난 적이 없다고 나기 전에 어떤 느낌이냐 다래끼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안대는 쓸 거냐를 묻자 갑자기 화를 냈습니다.
가끔 얄미운 목소리로 깐족거리는 내가 나는 참 좋습니다. 넌 40대 되기 전에 그 깐족거림으로 인해 죽게 될 거야라고 말한 친구와 함께 아직도 잘 살고 아니 그냥 살아있습니다.
오래된 조명은 생각보다 어둡습니다. 사회자가 등장하고 오래된 앰프는 에코가 많이 들어간 탓에 천막 안은 동굴 같습니다. 그리고 이곳저곳마다 석유난로를 피워두었습니다. 몸에 붙는 옷을 입은 아이들은 한정된 공간 안에서 화려한 몸놀림이 시작됩니다.
물구나무를 서고 항아리를 돌리거나 난쟁이들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서로 부딪히고 싸우며 재주를 부렸습니다. 외발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관객석까지 자전거를 타고 들어왔으며 애인과 같이 온 사내들은 자전거 탄 사람의 허리춤에 지폐를 끼워주었습니다.
같이 온 여자들은 자랑스러워하며 웃었고 어린 우리는 손뼉을 쳐주었습니다. 책상을 돌리고 접시나 공의 숫자를 늘려가며 계속해서 서로에게 던져가며 떨어뜨리지 않았습니다.
공중그네에선 한 남자가 빠르게 줄사다리를 기어오릅니다. 천장 아래 그네에서 작은 그네를 탑니다. 날아올라 그네를 타고 크게 움직이며 반대편에 사뿐히 내려앉습니다. 애인과 함께 온 여자들은 고개 들어 올려다봅니다.
남자는 팽팽하게 당겨진 그녀의 목선이나 귓불을 바라다봅니다. 남자의 어깨를 때리거나 남자의 팔을 손으로 꼭 쥐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녀는 남자가 무얼 바라다보는지 모릅니다.
다시 여자가 공중그네를 탑니다. 발을 걸고 그네를 타던 여자가 남자를 향해 날아올라 다음번 그네에서 기다리던 남자의 발을 잡고 기어오릅니다.
비슷한 공연은 계속됩니다. TV에서 보던 다른 서커스에 비해 보잘것없지만, 공연에 온 아이들은 무척 착한 아이들이 되어있습니다.
엄마는 서커스를 보러 가는 여동생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거기 있는 애들 봐…. 너보다 언니나 오빠인데 말 안 듣는 아이들을 보내면 거기서 훈련을 시킨다는구나. 요즘 어떤 아이는 말을 너무 안 들어서 사회자 아저씨가 계속 볼 거야 데려갈까 말까 하고 말야 잘 다녀오너라~”
아이들은 절망의 눈빛과 안쓰러움 그리고 묘한 동질감으로 공연하는 아이들을 쳐다봅니다.
우리는 공연을 보고 와서 저마다 방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베개를 발바닥으로 돌리는 연습을 했습니다. 친구 중엔 서커스단에 들어갔으면 하는 아이도 있고 그곳엔 절대 갈 수 없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너무 추워 보였고 힘겨워 보였으며 너무 말라 있었습니다.
어느 힘겨운 겨울날. 나는 서커스단에 맡겨진 아이였습니다.
나는 아무리 연습해도 항아리를 굴릴 수 없습니다. 공중그네를 타기엔 고소공포증으로 아래를 내려다볼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견뎌내는 일상은 서커스와 같습니다. 저마다 누군가 앞에서 자기 장기를 보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공연을 무사히 끝낸 뒤
이제 한쪽 손을 힘차게 들어 올려 허리를 굽히고 인사하고 들어오세요.
무대 뒤에서 힘차게 따스한 담요로 몸을 감싸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