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지독하게 평범하게
샤갈은 원래 무용수를 꿈꾸었고, 그다음에는 가수를, 그다음에는 시인을 꿈꾸었다. 꿈꾸는 듯한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가가 되었다. 그는 둥둥 떠다니는 집과 사람들과 동물들을 그렸다. 마치 꿈속에서처럼,
샤갈의 그림에서는 현재의 기억들과 과거로부터의 기억들이 서로 겹쳐진다.
시간과 공간 사이의 경계선조차 사라져 버린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 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數千 수만數萬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三月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네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침대 아래로 내려가려고 침대 끝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케이블카를 기다립니다. 고개를 들자 작은 안내판에 너무나 작은 글씨로 우천 시 운행이 정지된다는 작은 글씨를 안경다리를 입에 물고 들여다보다 침대 아래를 느리게 내려옵니다. 흘러내린 속옷으로 안경알을 닦느라 잠깐 멈춰 서 있다가 마지막 계단 아래서 책상으로 가는 마을버스가 도착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책상까지 걸어갔어요. 책상까지 가는 길은 제법 아스팔트가 잘되어 있어서 일단 컴퓨터를 켜고 음악을 틀어두었어요.
책상에서 화장실로 갈 때 다행히 택시가 잡혀서 택시를 탔고요. 택시비가 너무 올랐더라고요.
그리고 기사님이 자꾸 말을 시켜서 중간에 세워달라고 했는데 기사님이 잔돈을 안 주고 그냥 가셨어요.
화장실에는 아주 큰 호수가 있었는데 한 번 더 오염된 적이 없는 뜨거운 비가 내렸어요. 호수의 문을 닫으면 금방 호숫가로 안개가 피어올랐죠. 나를 바라보려면 손으로 거울을 닦아내야 했어요. 속이 손을 대충 닦고 엘리베이터까지 전철을 타고 내려서 두 대중 하나는 늘 고장이 나 있었는데 바보같이 운행되지 않는 승강기 쪽에 서 있다가 옆쪽의 승강기 문이 열리자 같이 승강기 안으로 들어오던 같은 라인의 여자가 웃으며 이렇게 인사하는 거예요.
“정신을 어디 두고 그쪽에서 기다리는 거예요?”
“그러게요, 그쪽 아니었다면 금쪽같은 수요일을 거기 서서 보낼뻔했네요. 고마워요”
눈은 멈췄지만, 어둠이 자욱하고 손끝은 이미 시려오고 있었죠.
담배 한 개비를 피우고 다시 역순으로 집으로 돌아갔어요.
오전에 한 시간 동안 바이킹을 타고 한 시간 반 동안 롤러코스터를 멈추지 않고 탔어요. 점심을 먹는 동안에도 바이킹에서 내리지 못한 몸은 점심을 먹고 나선 저녁시간까지 자이로드롭과 회전 그네를 타고 있었어요.
밤이 되자 이 끝나지 않은 것 같은 시간 속을 비닐 커버를 벗겨낸 건조한 키친타월처럼 거리를 나섰어요. 집까지 걷는 동안 대기 속의 습기를 빨아들여 젖은 끝자락을 계속 짜내며 더 이상 짜낼 수 없을 때마다 한 칸씩 뜯어냈어요.
길가에 칸칸이 버려진 그레텔의 빵조각처럼 떨어져 있었죠. 내일이면 키친타월을 따라 산책을 할 것 같아요.
고양이가 병아리처럼 우는 집 한켠에 마련된 숙소에 돌아와 심지 위로 적당량의 키치타월을 감아 움직여요. 냉동실에서 꺼낸 빙하로 만든 김치찌개를 냄비에 톱으로 썰어 넣고 한겨울 밖에 내놓았다가 잊어버린 함박스테이크 두 덩이를 꺼내 눈을 녹여 다시 따스하게 기름을 두른 팬으로 익혀냅니다.
전자렌지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위에 고깃덩이 한 점과 찌개를 비벼서 키친타월이 젖지 않게 심지 안으로 살며시 밀어 넣어요.
날씨가 맑아지면 우리 피어난 민들레마다 도화선을 연결해서 다 폭파하게 시켜 버려야겠어요.
눈이 멈췄어요. 케이블카를 타고 침대로 갑니다.
케이블카 아래 모란의 빠진 털을 보며 혹시 고양이가 홀씨가 있는 건 아닐까. 온 집안에 작은 모란들이 피어나면 어떡하지 하며 꼬리를 손으로 쓰다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