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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사랑을 시작하였다.

다디단 초콜릿과 사탕 따위가

by 적적

입춘이었던 날 썼던 글을 봅니다. 아직 추울 거라고, 이름만 입춘이지 날씨는 더 차갑고 건조할 거라고, 봄이 언제 오냐고 오긴 올 거냐고, 혹시 올해는 이렇게 은근슬쩍 거리가 갑자기 더워져서 바로 여름이면 어떡하냐고,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경칩까지 죽지도 않고 살아있어 또 글 한 편을 씁니다.


오늘은 그야말로, 바야흐로 경칩입니다.


개구리가 밖으로 나왔다가 아 이거 너무 추운데 뭐라도 걸치고 나와야 하는 거 아냐 할 만큼 쌀쌀합니다. 추운데 그냥 나오면 닭살이 돋아 개구리인지 못 알아볼 것이 분명하므로 오늘은 예의상 경량 패딩 조끼를 입고 나와야 하는 날입니다. 새벽 달빛에 경량 패딩을 두 세 겹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했을 겁니다 겹겹이 입은 패딩으로 다리는 더욱 가늘어 보일 것입니다. 사실 이런 날에 물속을 헤엄치는 일은 부담스러워 햇살이 드는 바위 위에 있다가 몇 번 사람들 눈에 띄면 반차를 쓰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사정상 겨울잠을 더 자고 싶다거나 그 작은 콧구멍에서 콧물을 멈출 수 없이 흘러나와 창피하다거나 하는 개구리 말고는 다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화이트데이 이즈 조선


날이 따스해지는 조선에는 젊은 서생이 하나가 살고 있었는데 용모는 전혀 수려하지 못하였으나 오랫동안 서책을 읽고 글재주가 여인들의 마음을 간혹 아주 간혹 훔치는 묘한 글을 쓰는 얕은 재주가 있었는데….


낭자 오늘 밤 내게로 와주지 않겠소?

내 그대를 오랫동안 지켜보았소. 함께 은행을 나누고 싶구려~


조선 세조 때 강희맹이 쓴 사시찬요(四時簒要)에는 은행껍질이 세모난 것이 수은행이고 두 모는 것이 암은행이라 했는데, 대보름날 은행을 구해두었다. 남편과 아내가 혹은 사랑하는 연인과 경칩 날 세모와 두모 은행을 각각 나눠 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있는데 서로 마주 바라보고만 있어도 사랑의 결실이 오고 간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의 처녀와 총각들은 경칩 날 어두워지면 좋아하는 상대와 함께 은행을 나눠 먹으며 각자 수나무와 암나무를 돌며 눈빛을 맞췄습니다. 천년을 산다는 은행나무에서 기원했겠죠.


꽃이 피어나기도 전에 조선은 이미 사랑을 시작하였습니다.


차가운 봄입니다. 출근하기 무척 꺼려지는 목요일이고요.


성스러운 노동을 하고 난 뒤 오늘 밤 은행나무 아래로 모두 모입시다.


오늘 밤엔 사랑하는 사람과 뭐라도 나눠 먹읍시다.


조선시대 남녀라도 은행만 먹고 헤어지진 않았을 터.




이 추운 날씨에 은행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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