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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피워내는 건.

샘이 났던 거야

by 적적

겨울이 시작되면 창가에 기대어 바람의 숨결을 느낀다. 유리창 너머로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저것이 바람의 장난인지 나무의 한숨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 겨울바람은 날카롭고 매섭지만, 어쩌면 그것은 꽃을 향한 질투로 피어난 감정일지도 모르지. 봄이 오면 세상은 꽃들의 향연으로 물들고, 사람들은 그 찬란한 존재 앞에서 설렘을 느끼지. 겨울은 차디찬 손끝으로 세상을 감싸지만, 아무도 그것을 따뜻하게 맞아주지 않아. 겨울은 질투 어린 손길로 꽃들의 흔적을 지우고, 얼어붙은 숨결을 불어넣으며 세상을 정리하려 드는 건지도.



꽃들은 따뜻한 공기를 타고 피어올라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겠지. 한동안 꽃들은 바라보느라 멍하니 넋을 놓고 있을지도 모르지. 아이들은 꽃잎을 조심스레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그것이 공기보다도 가벼운 듯 살랑거리는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게 될 거야. 꽃은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부드럽게 감싸고, 사람들의 마음속까지 따뜻한 색으로 물들이지. 겨울은 어쩌면 꽃이 될 수 없는 슬픔을 안고, 그렇게 조용히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거야.



겨울을 무서워했어. 창밖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는 늑대의 울음 같았고, 벽에 비치는 나뭇가지의 그림자는 마치 손을 뻗어 나를 잡으려는 것처럼 보였지. 어둠 속에서 창문을 덮친 눈보라는 유령의 속삭임 같았고, 발자국 하나 없는 눈밭을 보면 세상이 텅 빈 채 얼어붙어 버린 듯한 두려움이 몰려왔어. 모든 것이 얼어붙은 풍경 속에서 홀로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던 거야. 나이가 들면서, 겨울이 주는 고요함을 사랑하게 되었어. 사람들은 겨울을 잔인한 계절이라 말하지만, 가끔 겨울이 어딘가 슬퍼 보인다고 생각했지. 사랑받고 싶었으나 늘 외면당하는 계절, 찬란한 봄을 질투하지만, 결코 그 빛을 가질 수 없는 계절. 그래서 더더욱 꽃들에게 질투를 느낄 수밖에 없는 계절.



겨울이 샘이 나서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릴 때, 그 풍경이 마냥 쓸쓸하지만은 않다고 느낀 적이 있어. 꽃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따뜻한 기억을 심고, 부드러운 향기로 존재를 각인시키지만, 겨울은 그럴 수 없잖아. 눈보라 속에서 잎을 떨구고 가지만 앙상한 채로 남아야 하는 겨울은, 그 무엇보다도 꽃이 부러웠을지도 모르지. 차가운 눈이 온 세상에 쌓이면, 마치 겨울이 꽃을 흉내 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잖아. 눈송이는 꽃잎처럼 공중에서 흩날리고, 가지마다 하얀 꽃들이 피어난 것처럼 보이기도 해. 눈꽃은 따스한 햇볕이 닿는 순간 녹아 사라져 버려. 질투에 가득 차서 꽃을 없애버리려 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처럼 아름다운 존재로 기억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겨울이 깊어갈수록, 그 마음이 이해될 때가 있어. 질투와 그리움은 사실 닮아 있는 감정인지도 모르잖아. 사랑하는 존재가 나에게서 멀어질 때, 질투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 존재를 더 깊이 품게 되는 거니까. 겨울도 마찬가지야. 스스로가 곧 떠날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더 강렬하게 세상을 붙잡으려 하는 거지. 바람은 더욱 날카롭게 불고, 하얀 눈은 깊이 쌓여 발자국조차 허락하지 않아. 그 차가운 품속에서도 겨울은 기억되기를 바란다. 눈송이 하나하나가 흩날릴 때마다, 가지마다 남겨진 서리가 반짝일 때마다, 겨울은 자신을 오랫동안 잊지 않기를 소망하는 거지. 꽃을 향한 질투가 쌓이고 쌓여, 결국에는 그들을 닮은 흰 눈이 되어 세상 위에 내려앉는 중이지. 그 속에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될 거야. 어쩌면 겨울은 떠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신의 존재를 선명하게 새기고 싶었던 건 아닐까.


눈꽃으로.



겨울은 질투를 품은 채 꽃들을 얼어붙게 만들지만, 결국 자신도 꽃이 되기를 갈망하는 계절인 거야. 차가운 바람으로 꽃잎을 떨구면서도, 어쩌면 그것을 가장 먼저 그리워하는 것도 겨울일지 모르지. 얼어붙은 대지 위에 하얀 눈꽃을 피우듯, 겨울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아름답게 남기려 애쓰는 거야. 눈꽃은 오래 머물지 못하고, 결국 따뜻한 온기에 녹아 사라져 버려. 그렇게 겨울은 흩어지면서도 어딘가에서 다시 시작될 계절을 꿈을 꾸겠지. 질투 속에서도 사랑을 품고 있는 계절, 그 겨울의 마음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 문득, 그 차가운 품이 아릿하게 그리워지는 거겠지.


대문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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