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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볕. 봄에 대한 태도

소용돌이치는 순간은 풀리지 않을 거야.

by 적적

얼어붙었던 감각들이 하나둘씩 해방되는 것처럼, 따뜻한 볕에 눈을 감고, 밤하늘 아래서 숨을 고른다. 새벽엔 비가 내린다. 내리던 비는 오독오독 소리를 내며 눈으로 변한다. 비가 눈으로 변하는 순간까지 새벽을 서성거린다. 겨울이 마지막으로 깨우고 있다. 피부에 닿아, 가슴에 스며들고, 마음을 흔든다.



젖은 아스팔트 바닥으로 볕은 금빛 실처럼 공기 속을 흘러 다니고, 은빛의 물웅덩이가 마음을 감싼다. 이 계절이 오면, 그것들을 향한 태도를 다시금 가다듬게 된다.



볕은 마치 오랜만에 마주한 연인처럼 낯설고 반갑다. 햇살은 새벽의 차갑고 끝날 것 같지 않은 계절을 반복하고, 창가에 걸린 얇은 커튼을 타고 흔들린다. 아침이 되면 거실 안에도 황금빛이 부드럽게 깔리고, 서서히 온기가 깃든다. 차가웠던 손끝을 스미듯이 덥혀주고, 공기 속에 가느다란 먼지마저 반짝이게 한다. 오늘 주황빛으로 흐르는 하늘 아래, 볕은 봄날의 생기를 거두고 부드럽게 가라앉는다.



볕을 대하는 태도란 그저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끌어안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움츠릴 필요도, 조심스레 다가갈 이유도 없다. 볕이 닿는 만큼이 아니라, 더 깊이 스며들도록 두 팔을 벌려 맞이하는 것이다. 볕이 머리칼 위로 내려앉을 때, 마치 금빛 실이 피부를 타고 흐르는 듯하고, 따스함이 등줄기를 따라 번져나간다. 눈을 감으면 얇은 눈꺼풀 너머로 붉은빛이 춤을 추고, 손바닥을 펼치면 따뜻한 기운이 손금 사이로 스며든다. 그 온기가 천천히 퍼지면서 가슴속까지 환하게 밝아질 때, 삶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용기가 샘솟는다. 욕심내지 않고, 그러나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온전히 스며들게 하는 것. 그렇게 볕을 맞이할 때, 가장 자연스럽게 봄을 품고, 느낄 수 있다.



볕은 하루를 빛으로 채운다. 이른 아침, 창가에 스며드는 볕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부드러운 신호처럼 느껴진다. 오후의 볕은 때론 강렬하게, 때론 유순하게 우리를 따스하게 데워준다. 볕은 시간에 따라 그 얼굴을 달리하지만, 언제나 곁을 비추는 존재다. 그렇게 볕은 봄날의 활력을 불어넣고, 생명의 기운을 퍼뜨린다. 볕이 있는 곳에서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볕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늘은 잠시 쉬어가는 포근한 안식처가 된다. 그늘이 있기에 볕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진다고 볕이 너무 강하면 꽃도, 나무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그늘을 찾는다. 지나친 밝음이 오히려 쉼을 필요로 하듯, 우리는 때때로 달빛 아래에서 조용히 숨을 고른다. 달빛은 그런 순간에도 우리를 감싸며 부드러운 위로를 건넨다.



달빛을 대하는 태도는 볕을 대하는 태도와는 조금 다르다. 달은 기다려야만 온다. 볕이 향해 다가오는 것이라면, 달은 고요히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존재다. 은은한 달빛 아래에서는 사소한 감정들까지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오래전 읽었던 시구가 떠오르기도 하고, 묵혀두었던 마음 한 자락이 조용히 피어나기도 한다. 이런 밤이면 산책을 나선다. 달빛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마치 달이 그림자를 어루만지며 세상의 표면에 닿아 깊숙이 가라앉아 마음을 덜어내 주면.



달은 조용한 이야기꾼처럼, 우리에게 많은 감정을 일깨워준다. 구름 사이로 가려졌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달은 마음의 굴곡을 닮아 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존재하는 달을 보면,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믿고 싶어진다.




나는 올봄에도 그렇게 살아가려 한다. 볕이 나를 감싸도록 내버려 두고, 달빛이 나를 어루만지도록 기다리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봄을 온전히 맞이하는 태도를 잊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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