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일기장.
겨울로 돌아가긴 너무 늦었다.
눈이 녹아 흐르고, 바람이 솜털처럼 부드럽게 스며든다. 그러나 내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도 겨울이 머물러 있다. 바스락거리던 눈길을 걸으며 들었던 낮고 차분한 숨소리, 하얀 입김 사이로 얼어붙던 조용한 말들, 그리고 손끝을 스쳐가던 싸늘한 공기의 잔상. 나는 아직도 그 모든 감각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창밖의 풍경은 이미 계절을 갈아입었다. 벚꽃이 수줍게 피어나는 계절 속에서, 나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잔영을 그리워한다.
어쩌면 이건 나만의 몽상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는 동안, 나는 여전히 지난 계절의 조각들을 손끝에 쥔 채 머물러 있다. 따뜻한 햇살이 노란 꽃잎처럼 스며드는 거리를 걸으면서도, 마음속 어딘가에는 한겨울의 잔상이 그림자처럼 남아 있다. 얼어붙은 창문에 손끝으로 그림을 그리던 순간, 새하얀 입김이 유리창 위에 한 줄의 시처럼 맺히던 기억, 깊은 밤 따뜻한 방 안에서 들리던 바람 소리와 함께 퍼지던 촛불의 흔들림, 새하얀 눈이 세상을 감싸 안으며 전하는 적막한 평온함. 그 시간들은 마치 영원히 멈춰버린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워서, 떠나보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안다. 겨울로 돌아가긴 너무 늦었다는 것을. 시간은 스며들듯 흘렀고, 계절은 부드러운 손길로 얼굴을 바꾸었다. 차가운 바람 대신 살랑이는 산들바람이 볼을 스치고, 앙상했던 나뭇가지에는 연둣빛 새싹이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밀었다. 내 마음이 아무리 겨울을 그리워해도, 자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봄을 향해 걸어간다. 나는 이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떠나온 계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나간 계절을 가슴 깊이 품고 살아간다. 그리움은 추억의 결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고, 아쉬움은 지난 시간을 더욱 빛나게 한다.
나는 오늘도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창문을 열면 새벽이 갓 내린 듯한 촉촉한 바람이 피부를 감싸고, 햇살은 황금빛 물결처럼 창가에 잔잔히 머문다. 거리에는 봄날의 웃음이 꽃잎처럼 흩날리고, 사람들은 부드러운 천의 옷자락을 두른 듯 가벼운 걸음으로 계절을 맞이한다. 그리고 나도 그 흐름에 몸을 맡긴다. 비록 내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겨울의 서늘한 잔향이 맴돌지만, 나는 계절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다. 봄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내 안에 스며든다.
겨울이 남긴 모든 순간을 가슴 깊이 묻은 채, 나는 서서히 다가오는 봄을 맞이한다. 겨울로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지만, 차가운 바람이 남긴 기억들은 얼룩처럼 내 안에 남아 빛난다. 언젠가 다시 겨울이 문을 두드린다면, 나는 그 차가운 공기를 반가운 친구처럼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서늘한 봄바람 속에서 천천히, 조용히 계절의 속삭임을 따라 걸어가야겠다.
하나는 봄이 오기 전, 첫 번째 바람이 불어올 때 만든다. 겨울의 긴 적막을 뚫고 처음으로 느껴지는 따스한 기운 속에서, 새들은 서둘러 나뭇가지와 이끼를 모아 둥지를 짓는다. 그것은 삶을 위한 둥지다. 알을 품고, 어린 새를 길러낼 보금자리. 모든 것이 단단하고 안전해야 한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포식자의 눈을 피할 만큼 치밀하고 정교해야 한다. 둥지를 짓는 동안 새들은 어떤 망설임도 없다. 부리는 부지런히 나뭇가지를 물어 나르고, 날개는 쉼 없이 움직이며 공기를 가른다. 마치 본능에 이끌리듯,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날카로운 부리로 나뭇가지를 쪼아 적당한 길이로 만들고, 부드러운 깃털을 뽑아 둥지 안을 포근하게 채운다. 가지 하나하나를 교묘하게 엮어 틈을 막고, 이슬에 젖지 않도록 정성스레 안감을 덧댄다. 둥지는 점점 더 단단해지고,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정교한 형태로 완성된다.
새들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또 하나의 둥지를 만든다.
두 번째 둥지는 첫 번째 둥지와 다르다. 이곳은 생명을 키우기 위한 곳이 아니다. 오히려 새들 자신을 위한, 그리고 천적을 속이기 위한 장소다. 가장 높은 나뭇가지 끝자락, 혹은 숲의 어둠 속 깊은 곳. 첫 번째 둥지가 세상의 시선 속에 놓여 있다면, 두 번째 둥지는 오직 새들만이 아는 은신처다.
둥지는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듯 위장된다. 바람에 흔들려 부서진 듯한 나뭇가지와 마른 이파리들이 둥지를 덮고, 일부러 헝클어진 구조를 연출한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그곳은 예상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다. 천적들이 쉽게 발견하지 못하도록 가려진 그 둥지에서 새들은 숨을 죽이고 긴장을 푼다. 햇빛도 스치듯 스며들 뿐, 고요한 그곳에서 새들은 몸을 웅크리고 부드러운 깃털에 얼굴을 묻는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긴장할 필요가 없다. 깃털 사이로 부드러운 바람이 스며들고,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들려온다.
인간도 어쩌면 두 개의 둥지를 가졌는지 모른다.
하나는 완전한 타인을 위해 만드는 둥지다. 가족과 친구, 연인과 사회를 위해, 우리는 부지런히 둥지를 짓는다. 안정적인 직장을 찾고,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타인을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간다. 그 둥지 안에서는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들이 머물고, 우리는 그곳에서 책임을 다한다. 하지만 그 둥지는 언제나 바쁘고, 때로는 너무 많은 눈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편히 쉴 수 없는 곳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또 하나의 둥지를 만든다.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공간. 깊은 밤, 불 꺼진 방 안에서 들리는 심장의 고동일 수도 있고, 낯선 골목을 걷는 짧은 순간일 수도 있다. 혹은 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둔 공간일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우리는 오롯이 나 자신으로 존재한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얼굴로, 아무런 역할도 지지 않은 채 가만히 머무른다. 온 세상의 소음이 멀어지고, 나를 감싸는 침묵이 오롯이 나를 위로하는 순간.
새들은 언제나 두 개의 둥지를 만든다. 하나는 살아가기 위해, 하나는 존재하기 위해.
그렇게 살아간다. 한 곳에서는 타인을 위해 날개를 펴고, 또 다른 곳에서는 나 자신을 품는다. 우리는 삶이라는 바람 속에서 흔들리지만, 두 개의 둥지가 있기에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니, 너무 한 둥지에만 머물러 있지 않아도 된다. 때로는 쉼 없이 날아가는 새처럼, 두 번째 둥지를 향해 몸을 맡겨도 좋다. 바쁜 둥지를 벗어나, 숨겨둔 둥지로 날아가라. 그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바람의 속삭임과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고요한 울림 속에서, 우리는 다시 날아오를 힘을 얻는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당신만의 두 번째 둥지를 소중히 간직하길. 그리고 기억하길.
언제든 다시 날아오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대문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