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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돌아와서

내일을 맞이해야지

by 적적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단어는 여섯 살에 알게 되었어요. 아니 처음 듣고 이건 뭐지 엄마에게 물어보자 엄마는 머리를 조금 세게 쓰다듬어 주었어요. 그런 행동은 엄마가 설명하기 힘들거나 잘 모르거나 몰라도 된다는 무언의 행동이란 걸 이미 알고 있었죠. 어떻게 이리도 멋지게 발음되는 소리가 있을까 꽃, 별, 사람, 산, 구름, 책상, 밥그릇, 건빵 같은 것들과는 입 모양 자체가 달라서 계속 입안으로 오물거렸죠.


허무(虛無)였어요.


참 멋진 단어구나


허-무라고 입술을 오므려 말해보면 마음이 왜 이상하지, 왜 허 자와 무 자는 사이는 그렇게 큰 방이 있는 거지, 왜 말하고 나면 한숨이 나는 거지, 왜 앉아있던 그 길가를 털고 쉽게 일어날 수 없는 거지.



혼자 어두운 빈방에 무릎을 모으고 앉아 되뇌어 보면 흑설탕 한 숟가락 입안에 품고 타액으로 녹여 먹는 것처럼 입안이 달콤했어요. 하얀 설탕을 먹을 때처럼 달콤하지만 다른 향 같은 게 났었어요. 간혹 허무가 되고 싶구나라고 어렴풋이 나를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가슴 왼쪽에 작은 방일 거야 그 방엔 붉은 조명이 켜져 있지.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는, 손을 대보면 작은 공처럼 생긴 살점이 늘 벽을 쿵쾅거리며 뛰는 거지 계절로 보면 봄에 가까울 거야 따뜻해지길 바라는 사람들이 두꺼운 옷을 입고 욕을 해대는 걸 봐

빈방에 앉아 들이치던 햇살이 어둠으로 바뀔 때까지 생각한 결론은 이것이었어요.


모든 사람에겐 텅 빈 공간이 있을 거야

그리고 그 방의 나머지 부분을 허무라고 부르는 걸 거야


이제 나는 허무를 설명할 줄 아는 어린이가 돼버린 거야.


아마도 그 무렵부터 어른에게 물어볼 단어들과 묻지 말아야 할 단어들을 나누고 있었는지 몰라요.


자연 시간에 개구리 해부를 하던 날. 사람의 심장도 개구리 심장과 다를 게 없다는 말을 시작으로

고작 개구리 심장과 내 심장이 같은 모양이구나 개구리의 허무도 그런 것이었어

인간은 참 멋 대가리 없는 존재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목요일 아침은 늘 허무했어요.

막차가 떠나버린 환승역. 힘겹게 오른 플랫폼에서 돌아가는 사람들을 마주한 것처럼.


이제 돌아가야죠….

집으로.


비슷한 목적지를 가진 사람끼리 합승 택시에 실려 서로의 옷깃이 불편치 않게,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고 잠은 왜 이리 쏟아지는 건지.

햇살은 커다란 대형 유리창에 손바닥을 대고 있는 것처럼 차가워요.


목요일 아침은 금요일 밤으로 가는


환승역 같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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