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관한 소묘.
등장묘물
박모란(꽃이 아닙니다. 날카롭고 상처 내기 쉬운 발톱을 지녔습니다. 지극히 소란스러우며 요즈음 물그릇엔 에 원하는 만큼의 물이 채워지지 않으면 물그릇을 손으로 툭 쳐내 업어버립니다.)
그(점 점 더 고양이를 닮아가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떨어뜨릴 수 있는 물건을 바닥에 내려놓는 일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하루 두 번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냅니다. 달리의 시계처럼 어딘가에서 흘러내는 중이기도 합니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두 개의 빛. 고양이의 눈이었다. 눈동자는 호박색으로 빛나며, 검은 세로형 동공이 깊은 심연처럼 보였다. 인간의 시야가 흐릿해지는 밤이 되면, 고양이는 본격적으로 세상을 탐닉하기 시작한다.
불빛이 거의 없는 골목길, 가로등이 닿지 않는 담벼락 위, 나뭇가지 사이에서 바람처럼 스치는 그 시선. 발톱이 조용히 바닥을 스치며, 부드러운 털이 공기에 흔들린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깊이와 신비로움을 품고 있다. 그 눈빛은 별빛처럼 차갑지만 동시에 따뜻한 온기를 머금고 있다.
눈을 들여다보면 마치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 듯한 기분이 든다. 단순히 반짝이는 신비로운 빛 때문만이 아니다. 마치 우주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고양이의 동공은 행성처럼 빛을 반사하며, 그 속에는 별들의 흔적이 아른거린다. 인간이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존재, 낮과 밤의 경계를 유유히 넘나드는 존재가 바로 고양이이기 때문이다. 눈으로 세상을 인식하지만, 고양이의 눈은 세상을 초월해 무언가를 꿰뚫어 보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언뜻 보면 우리의 감춰진 내면마저도 읽어내는 것만 같다. 한없이 넓은 우주가 작은 두 개의 눈동자 속에 모여있는 듯하다.
어쩌면 고양이 눈이란 인간이 잃어버린 감각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빛이 있어야 볼 수 있고, 앞을 밝혀줄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고양이는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는다. 이는 단순한 생물학적 능력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담벼락 위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고양이를 본 적이 있다면.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눈은 반짝이며 세상을 꿰뚫고 있다. 한밤중 정원의 풀숲에서 아무 소리 없이 움직이는 고양이를 본다면, 우리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서도 확신을 가지고 걸어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에게 어둠은 장애물이 아니라 또 하나의 가능성이다.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틈과 공간을 헤집고 나아가는 그들처럼, 우리도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믿고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
밤이 되면 도시는 조용해지고,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 불을 끄며 무방비상태가 된다. 그 순간 고양이들은 깨어난다. 달빛 아래에서 그들의 눈동자는 반짝이며, 마치 작은 은하수를 담아낸다. 빛이 사라진 곳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시선으로 세상을 유영한다. 별빛이 내리는 하늘을 배경으로, 고양이들은 밤을 항해하는 선원처럼 자유롭게 떠돈다. 그들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질서와 규칙의 틈을 누비며 은밀한 꿈을 꾸듯 존재한다. 고양이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은 두려움을 모르는 시선이자, 밤을 가로지르는 별들의 언어를 읽어내는 창이다.
시야가 빛에 의해 제한되는 동안, 고양이 눈은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어둠을 틀 속에 가두려 하지 않고, 그 속에서 자유롭게 탐험하며 살아간다. 마치 두려움을 용기와 호기심으로 대체한 존재처럼.
고양이 눈을 바라보면 가끔 내 안의 어둠과 마주하고 싶어진다. 빛이 전부가 아니듯, 선명함 속에서만 길을 찾을 필요가 없다. 어둠은 숨겨진 비밀이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다. 고양이의 눈이 우리를 꿰뚫어 볼 때,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던 본능과 직관을 깨우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가끔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리고 다시 뜰 때, 내 안의 밤이 조금은 환해져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