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한 것이 자라나며
손을 들여다본다. 햇빛을 받은 손등 위로 희미한 핏줄이 떠오르고, 손가락을 살짝 움직이니 관절이 부드럽게 따라온다. 나의 손끝, 작은 반달 같은 손톱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손톱 위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결을 느껴본다. 오늘도 눈에 띄게 자란 것 같지는 않지만, 어제와는 조금 다르고, 일주일 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길어졌다. 손톱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천천히 자란다. 마치 우리의 하루하루가 쌓여 삶을 이루듯이.
손톱이 자라는 순간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마치 어둠이 서서히 스며들어 밤이 되고, 이슬이 내려앉아 아침이 깨어나는 찰나처럼 보이지 않게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어느 날, 불현듯 손끝을 바라보면 손톱이 길어져 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무심코 지나온 계절 속에서 어느 순간 꽃이 피어 있음을 깨닫는 순간과도 같다. 처음에는 그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손끝을 스치는 바람처럼 조용히 스며든 사랑이 이미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손톱을 짧게 깎는 편이었다. 손톱깎이를 손에 쥐면 서늘한 금속이 손끝에 닿았고, 날이 닿는 순간 작은 긴장감이 밀려왔다. 조심스럽게 손톱 끝을 눌러 잘라낼 때, 딱 하고 경쾌한 소리가 울린다. 떨어져 나간 조각들은 책상 위를 구르다 사라지고, 남겨진 손톱 끝은 매끈하게 정리된다. 손톱은 왜 자라는 걸까? 어쩌면 그것은 몸이 나에게 건네는 작은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네가 살아 있단다.’ 손톱이 자라는 것은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지만, 그 당연함 속에는 무수한 시간이 쌓여 있다. 아주 천천히,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삶이 자라고 있음을, 나는 손톱을 깎을 때마다 깨닫는다.
손톱이 자라는 속도를 조절할 수 없다. 하지만 빠르게 자라는 손톱은 그만큼 더 많은 마찰 면을 지녔을지도 모른다. 마치 어떤 일들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흐르고, 우리를 통과해 지나간다. 그러나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의미를 찾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손톱이 자라는 것처럼, 우리의 감정도, 우리의 관계도 그렇게 자란다. 너무 천천히 자라서 알아차리지 못할 뿐, 결국엔 분명한 변화로 남는다.
손톱이 자라는 순간을 보려고 몇 번이나 손을 바라본 적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집중해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기다리는 전화는 오지 않고, 기다리는 꽃은 쉽게 피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언젠가 고개를 들었을 때, 전화벨이 울리고 꽃이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손톱이 자라는 것도, 사랑이 자라는 것도, 꿈이 자라는 것도 그렇게 우리 모르게 진행되다가 문득 모습을 드러낸다.
어느 날 문득 손끝을 보며 ‘많이 길었네’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는 언젠가 문득 ‘많이 사랑했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혹은 ‘많이 성장했네’라고도.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고, 자라고, 변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손톱이 자라는 순간과 닮아 있다.
다시 손을 바라본다. 손끝을 따라 시선을 흘려보내며, 보이지 않는 시간의 결을 느낀다. 가만히 웃는다. 천천히, 조용히, 그러나 깊숙이 스며드는 변화 속에서, 나도 어느새 자라고 있기를 희망한다.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