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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알이하는 계절

봄이라고 수없이 얘기해 주면.

by 적적

태어난 아기가 처음 옹알이를 시작하는 순간처럼, 첫 숨결처럼 나뭇가지 사이를 살랑이며 스쳐 지나가고, 개울물은 작은 목소리로 졸졸 흐르며 조용한 노래를 부른다. 풀들은 마치 아기가 팔과 다리를 움직이며 몸을 익히듯 땅속에서 몸을 틀며 기지개를 켜고, 아기가 부모의 얼굴을 보며 처음으로 입을 벌리고 어설픈 소리를 내뱉듯, 꽃들도 햇살을 향해 조그맣게 속삭인다. 그 말들은 아직 완전하지 않지만, 생기로 가득 차 있다.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드는 늦겨울. 오래된 공원을 걸었다. 하지만 공기에는 아직 꽃샘추위가 남아 있어 코끝이 살짝 시렸다. 새들은 나뭇가지 위에서 몸을 부풀리며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마치 부모가 아기가 첫 말을 하기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처럼, 세상은 아직 남아 있는 차가운 공기 속에서 따뜻한 봄의 목소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아기처럼 조잘거리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속삭인다. 수다스러운 계집아이가 방긋 웃으며 재잘댈 때처럼, 입술은 작고 탐스럽게 반짝인다. 바람이 지나가며 살며시 귓가에 이야기를 들려주고, 파릇파릇한 풀들은 서로를 부르며 가만가만 흔들린다. 비가 내리면 흙은 촉촉한 숨을 내쉬며 나직이 향기를 퍼뜨린다. 어쩌면 봄은 우리가 놓쳐버린 언어를 되찾아 주는 계절일지도 모른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물관으로 물이 역류하느라 숨을 몰아쉬는 마른나무 가지의 떨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공원의 수돗가에 다다랐다. 녹슨 수도꼭지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바닥에 고인 작은 물웅덩이는 하늘의 푸른빛을 펼치고 있었다. 수도꼭지를 틀자 물이 콸콸 쏟아지며 돌바닥을 두드렸다. 물방울들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며 투명한 음표를 만들어냈다. 아이가 손을 씻으며 장난스럽게 물장구를 치자, 촉촉한 웃음소리가 공기 속에 퍼졌다. 한쪽에서는 새 한 마리가 와서 물을 쪼아 마시며 작은 입을 찰싹거렸고, 그 옆에서 바람이 지나가며 낙엽을 가볍게 굴렸다. 너무나도 조용하면서도 시끄럽다고 느꼈다. 자연과 사람의 조그마한 소리가 모여, 침묵 속에서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따스한 빛으로 가득하지만, 어딘가 손에 닿지 않는 어린 날. 숨결을 실어 작은 씨앗을 날리며 바람에게 비밀을 속삭이곤 했다. 햇살 아래서 반짝이며 뛰어다니던 순간들, 손가락 사이로 전해지던 꽃잎의 부드러운 감촉, 그리고 귓가를 스치던 맑은 웃음소리까지. 지금은 아득한 거리 너머의 풍경이 되어버렸지만, 봄이 오면 다시금 그 감각들이 소리 없이 피어오른다. 햇볕의 따스함, 촉촉한 흙 내음, 살며시 어깨를 스치는 산들바람이 오래된 기억의 문을 두드리듯 다가온다.



옹알이하던 아기의 목소리가 어느 날 문득 또렷한 단어로 변하는 순간처럼, 봄의 속삭임 속에서도 선명한 말들이 들려오는 듯하다. 아직 서툴고 부정확하지만, 그 울림 속에는 세상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무슨 뜻인지 정확하지 않아도,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환한 미소를 짓고, 기쁨에 찬 눈빛을 보낸다. 지금 이 계절이, 이 시간이, 이 공기의 떨림이 오롯이 나에게 주어진 선물이라는 사실이 가슴 깊이 스며든다.

발걸음을 옮긴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 줘." 아직 꽃은 피지 않았지만, 꽃을 기다리는 마음이야.


봄의 옹알이를 귀 기울여 들어본다.


걸어온 길을 거슬러 가며 가만히 소리 내본다.



봄…. 봄...




따라 할 수 있을 때까지….


대문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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