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장면.
한 남자의 눈동자 속의 여자는 자신의 가늘고 긴 손가락 중 검지손가락을 입 안에 머금었다가 맺혀있던 남자의 입술 사이로 붉은 립스틱이 반지처럼 끼어있는 검지손가락을 밀어 넣는다.
남자의 부드럽고 따스한 혀가 느껴지고 가늘고 긴 손가락 한 마디가 느껴진다.
서로 눈을 감지 않은 채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파고든 손가락은 남자가 혹은 여자가 녹아내릴 때까지 계속된다.
겨울은 결코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천천히, 마치 눈 위에 스며드는 따뜻한 빛처럼, 봄에게 조금씩 갉아 먹힌다. 강렬한 폭풍과 차가운 바람이 마지막으로 세상을 휘감고 지나갈 때, 봄은 은밀하게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눈 속에 갇힌 새싹들은 흙의 속삭임을 들으며 조용히 몸을 움츠리고 있다가, 어느 순간 살며시 흙을 헤집고 올라온다. 그 모습은 마치 빛을 찾아 헤매는 연인의 손끝처럼 애틋하고도 조심스럽다. 투명한 물방울을 머금은 봉오리들은 찬 바람에 흔들리며, 그러나 결국엔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서서히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켤 것이다.
봄이 겨울을 잠식하는 방식은 잔인하기보다 부드럽다. 따뜻한 햇볕이 얼어붙은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을 때, 그것은 폭력적인 것이 아니라 애무에 가깝다. 나무는 조금씩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며, 몸속 깊이 흐르던 수액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치 얼어붙은 시간 속에서 감정을 잃었던 존재가 다시 심장의 두근거림을 되찾듯이, 자연은 기지개를 켜며 봄을 맞이한다.
봄은 단순히 따뜻한 기운만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오래된 것들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히는 계절이다. 겨울의 얼음이 녹으며 길거리는 질척한 물웅덩이로 가득 차고, 바람은 여전히 차가우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달콤한 내음을 품고 있다. 봄은 겨울을 핥아먹으며 동시에 겨울의 잔해를 품는다. 지나간 시간을 완전히 지우지 않은 채, 그 위에 새로운 색을 덧칠하는 유화 같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던 강물이 서서히 얼굴을 드러낼 때, 봄은 마침내 겨울을 삼켜버린다. 하지만 겨울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녹아내린 눈물이 강이 되고, 사라진 얼음 조각들이 잦은 바람으로 남아 대지를 스쳐 지나간다. 봄이 겨울을 녹여 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변화와 연속의 이야기다. 겨울은 봄에게 조금씩 자기 몸을 내어주면서도, 결국 봄 안에서 살아남는다. 그것은 흘러가는 계절의 윤회이며, 사라짐과 탄생이 맞닿아 있는 경이로운 순간이다.
겨울을 입 안에 머금었고, 자신을 내어주며 봄 속에 스며든다. 아마도 겨울이 우리에게 남긴 흔적이 아직 가슴속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아쉬움마저도 새로운 계절의 일부가 되어, 봄바람에 실려 어딘가로 사라져 간다. 깨어난 따스한 햇볕 아래에서 봄을 맞이한다. 그렇게 계절은 우리도 모르게 우리를 녹아내리게 하며 새로운 시간 속으로 데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