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를 걸어두지 마세요
지표면 아래까지 내려온 하늘을 안개라고 하는 거죠…. 멀리 보면 아니 바라다본 것보다 더 멀리 보면 그 하늘로 거대한 해일 속으로 사람들이 스며들어 사라지고 차들도 빨려 들어가 버립니다.
누군가 멀리서 나를 바라다본다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나를 볼 수도 있을 것 같은 아침입니다.
아침엔 알람을 끄는 대신 5분 후에 다시 울리도록 하고는 그 달콤하고 안온한 5분을 더 누렸습니다. 다시 5분의 사치를 누리려다 바닥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듯이 아니 그 먼지를 손끝으로 한없이 모으듯이 일어났습니다.
요즘 들어 눈을 뜨는 일이 몸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 첫발을 내디뎌 침대 아래로 내려서는 일이 녹슬고 무거운 바벨을 들어 올리는 일처럼 힘이 듭니다. 그리하여 양쪽의 바벨의 각도를 조금씩 틀어가며 들어 올리는 대신 굴리고 있습니다.
몸을 굴려 계단을 내려오고 몸을 굴려 화장실에 가고 몸을 굴려 각도를 틀어….
기껏해야 의자에 앉거나 커피포트에 물을 부어야 할 때는 한쪽만 들어오려 높이를 맞춥니다. 굴리던 몸을 옷걸이에 걸어 두고 옷걸이에 걸린 옷을 걸치고 다시 구르며 밖으로 나갑니다.
금요일 아침이면 출근하는 사람들 속에 걷고 있지만 구르는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곤 합니다.
그런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얼마만큼의 무게를 들고 있는지 묻고 싶고 빠르게 굴러가 서로의 바벨을 툭 쳐보고 싶기도 합니다.
산책길 기온은 대체로 춥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침이면 급격히 추워진 기온은 정오가 지나며 손끝이 시리지 않다가 다시 밤이면 다독일 수 없는 기온으로 손끝은 차가운 정전기에 놀라곤 할 것입니다.
계절을 기다리는 일은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일처럼 부산합니다.
다들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마실 음료를 고르고 화장실을 미리 다녀오고 대기실 불편한 의자에 앉아 아주 낮은 소리로 켜져 있는 흥미도 없는 TV 자막을 성실하게 읽는 일처럼.
오늘은 정말 출근하기 싫다.
산책을 나옵니다. 선명했던 풍경은 물을 뿌려놓은 한지를 한 장씩 겹쳐 놓은 것처럼 짙어갑니다. 투명한 물이 무게를 지니지 않을 만큼 가벼워져 그 안갯속을 지날 때마다 늘어진 거미줄을 걷어내며 걷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안개는 이제 막 알에서 깨어 차가운 바람에 거미줄을 피워 올려 이동하는 이동 경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허공 중에 거미의 몸체와 가느다란 발을 찾느라 미간을 잠시 찡그리고 바라다봅니다.
물방울을 저렇게 겹쳐 놓는 것만으로 건너편 사거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얼마만의 안개인지 알 수 없지만 반가워 산책 시간이 턱없이 늘어나 버렸습니다.
느린 손길로 등줄기를 어루만지는 손길처럼
근육이 없는 살갗처럼.
창밖을 내다보는 모란의 시선처럼
건널목에서 고개를 들어 잠시 눈을 감습니다. 안개는 끝이 낡은 바늘처럼 눈꺼풀을 찌릅니다.
제가 사는 곳은 도로에 물기 한 점 없습니다.
그 많던 물기는 이 차가운 바람을 피해 땅속으로 스며듭니다. 흙 한 꼬집의 모서리마다 땅 위에 제 몸이 무덤이 될 봄 꽃들을 피우기 위해 슬러시처럼 얼지도 녹지도 않을 것입니다.
봄이 다 지나도록 아프지 말고 지치지 말아야 합니다.
봄 꽃들이 다 피고 질 동안
이 봄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진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