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제의 달로 오늘을 살고 있어요.

미묘한 것들로 힘이 됩니다.

by 적적

잘 잤어요? 오늘 아침은….


흐린 아침입니다. 후훗 흐린 아침이 아니었던 때도 없었는데…. 모란이 자기 화장실 쪽에서 울고 있습니다. 그래 일어나서 화장실을 치워야겠으나 나는 눈이 떠지지를 않는다고…. 몸을 뒤척일 수도 없다고…. 목요일이라서 회사 가기 싫다구…. 좀 있으면 회사를 가겠지만 가기 싫다고 투덜거리거나 작은 소망 하나쯤 가질 수 있는 거잖아. 회사 근처 사거리 건널목까지 투덜거릴 거야. 결사적으로 출근을 거부할 거야. 사무실 문을 열어 백기를 힘없이 흔드는 순간까지 저항할 거야.


모란이 다시 돌아와 손등을 정성껏 핥아주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코를 대고 호흡을 확인하고 멀리 떨어져 다리를 모으고 꼬리로 다리를 감싸고 앉아있습니다. 고양이들의 그런 자세는 인간이 팔짱을 끼고 있는 상태라는 말을 기억합니다.


고양이가 제가 볼 수 있는 거리에서 팔짱을 끼고 나를 가만히 아무 말 없이 보고 있으니

색종이로 접어놓은 것 같은 몸이 침대에서 일어나 앉습니다. 그런 기분 아나요? 색종이로 공 모 양을 접어서 마지막에 후-하고 바람을 불어넣으면 제법 공 모양으로 부풀어 오르는 순간의 기분….

수없이 접혀 무엇이 된지도 모른 채 입김을 받아들이는 색종이입장에서 보면 물론 기분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부풀어 오르는 일이 아주 느리고 의식하기 힘들게 바람이 새어나가는 것이. 목요일이므로 흐린 하늘이므로.

화장실로 천천히 걸어가 모란이 헤쳐놓은 모래 속에서 감자와 맛동산을 수확합니다. 농부의 맘 따윈 없습니다. 옷을 챙겨 입고 흐린 날들로 달을 못 본 것에 조금은 신경이 쓰였습니다. 달을 보며 소원을 빌다니 쳇!! 무슨 해괴망측한 발상인 거야. 됐어 이제 달은 쳐다도 보지 않을 테다.


어릴 적 퍼레이드를 무척 좋아하던 아이가 있었어요. 용인에 있는 놀이공원에 처음 갔을 때 아이는 퍼레이드를 볼 수 있다는 것에 한껏 들떠 있었는데 퍼레이드를 하는 길가에서 서성이느라 놀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전날 온 비로 바닥이 미끄러워 취소되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그래 이제 그따위 신나지도 않을 퍼레이드는 다신 보지 않을 테다



그리고 산책하러 나갔는데

아직 꺼지지 않은 가로등 위로.

푸른 휘장으로 가려진 하늘 위로.

귓가로 나팔 소리가 크게 들리며


그 온전하고 아름다운 밤의 달보다 더 투명하고 환하지만 눈이 부시지 않은….

나만 사진을 찍고 있고 나만 나팔 소리를 듣고 있고 나만 자꾸 걸음을 멈추고 실실 웃으며.

벅차오르는 가슴으로


수요일의 달로 목요일을 버텨내게 될 것입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
이전 01화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