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마다 포스트잇을 붙이며
어떤 날들은 손끝에 펜이 없으면 온몸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 한 글자라도 적지 않으면 마음속 무언가가 미끄러져 사라지는 기분. 마치 바람결에 흩날리는 먼지를 손으로 붙잡으려는 것처럼, 감정의 미세한 결을 놓치지 않기 위해 쓴다. 창문을 타고 흐르는 햇살의 결,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의 속삭임, 손끝에서 퍼지는 커피잔의 체온. 이 모든 것들은 단 한순간도 붙잡아두지 않으면 허공으로 녹아버릴 듯한 두려움을 안긴다. 비롯된 두려움을 사랑한다. 그 덕분에, 끝없이 글을 써 내려간다.
한 번이라도 감정의 결을 따라 정성스레 적어나간 문장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단어를 이어 붙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 안에 존재하는 모든 감각을 열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일이다. 마치 어린 시절, 소나기가 쏟아지는 여름날 창가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노트를 채워가던 순간처럼. 별을 올려다보며 떠오른 생각들을 조용히 적어 내려가던 기억처럼.
쓰지 않는 일이 불안하다. 어제와 같은 하루일지라도,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르고, 내일의 나는 또 다른 사람이 될 테니까. 친구와 나눈 짧은 대화 속에서도 마음을 울리는 단어가 있고, 길을 걸으며 마주친 낯선 풍경에도 이야기가 스며 있다. 그렇게 지나가는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매일, 그리고 순간마다 무언가를 적어 내려간다.
펜을 손에 쥐지 않으면 어딘가 공허하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락이 끊어진 것처럼, 혹은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내는 것처럼,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다시 펜을 들고, 종이를 펼치고, 첫 문장을 써 내려가면 비로소 안심된다. 다시 나 자신과 연결되었고, 세상과 소통하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고 있다고 느낀다.
밤이 깊어지면 유난히 그렇다. 방 안은 고요하고, 모니터 불빛만 어둠을 간신히 밀어내고 있다. 불빛 아래에서 하루에 허락된 단어들을 끄집어낸다. 어떤 날은 감정이 요동쳐 몽롱한 채로 쏟아내고, 또 어떤 날은 차분한 마음으로 조용히 하루를 정리한다. 하지만 어떤 기분이 든 결국 글이 되어 쌓인다. 마치 밤늦게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는 것처럼,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다시 불러오는 일. 그렇게 문장이 하나씩 이어질 때마다 나는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글을 쓰는 일은 '여기 있다'라고 조용히 증명하는 일이다.
글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손을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멈추게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나는 매일 무언가를 쓰면서 살아야만 한다. 오늘도 불안하다 나는. 잠시라도 쓰지 않으면 손끝에서 흩어질 것 같은 감각들, 붙잡아두지 않으면 사라질 기억들, 머릿속을 맴돌다 어느새 희미해질 이야기들. 종이 위에 적지 않은 꿈은 아침이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나는 멈추지 않는다. 단어를 이어가며 나를 찾고, 문장을 쌓아가며 나를 이해한다. 그리고 문득, 한 문장을 마무리할 때쯤 알게 된다. 나는 불안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불안에 아무런 불평도 없다. 불안으로 필요한 것을 얻고 있으니.
대문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