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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낯설어지거든.

마디가 있는 계절이 온 것이다.

by 적적

갑각류들의 탈피과정이 화면에 가득 차 있다. 바닥을 기어 다니며 흙먼지를 일으키느라 정확히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알 순 없지만, 꽤 오랜 시간 시청하며 탈피의 과정을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저게 뭐라고 가슴이 뭉클하고 뜨거워지는 건가. 생각하며.


겨울이 끝나갈 무렵, 대지는 아직 얼어붙어 있지만, 공기 속에는 미묘한 떨림이 스며든다. 얼음장 같은 땅 밑에서는 수많은 생명이 조용히 꿈틀거리고, 마른나무껍질 사이로는 푸른 새싹이 몸을 밀어 올릴 준비를 한다. 이 계절의 전환은 허물을 벗는 동물들의 몸짓과도 같다. 견고했던 껍질을 부수고 새로운 피부를 드러내는 순간, 생명은 다시 태어난다.


탈피하는 동물들은 오랜 시간 자기 몸을 감싸고 있던 껍질과 작별해야 한다. 뱀은 거칠어진 비늘을 밀어내며 한 겹의 과거를 벗고, 바닷가재는 단단한 갑각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힘을 쓴다. 오래된 껍데기에는 점점 금이 가고, 결국 가재는 몸을 구부리고 펴며 그 속에서 탈출한다.

탈피 직후의 몸은 말랑말랑하고 무방비하다. 해류에 흔들리고 포식자의 위협을 견뎌야 하는 시간 속에서, 점차 몸은 단단해지고 새로운 껍질은 더욱 크고 강해진다. 그 순간, 오래된 몸은 틀어지고 금이 가며, 생명은 다시 한번 자신을 드러낸다. 이 과정은 아프고 힘겹다.



허물을 벗어내는 동안 몸은 쉽게 다치고, 완전히 새로운 자신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얼어붙은 흙은 서서히 갈라지며 비밀스럽게 움트는 새싹을 품어낸다. 단단한 껍질을 밀어내며 작은 생명이 고개를 내미는 순간, 마치 갓 태어난 숨결처럼 여리고 투명한 빛이 땅속으로 스며든다. 새싹은 처음엔 떨리는 손가락처럼 조심스럽게 흙을 밀어 올리다가, 곧 온몸을 펴며 태양을 향해 나아간다. 한순간에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얼음과 바람과 어둠을 뚫고 나온 작은 떨림과 속삭임이 모여 봄이 된다. 아침 공기 속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변화, 바람의 향기 속에 섞인 새로운 온기, 아직은 차갑지만 부드러워진 햇빛. 이 모든 것이 겨울을 벗어나려 힘겹게 몸을 뒤척인다.


뱀이 허물을 벗은 직후 가장 무방비한 상태가 되는 것처럼, 바닷가재가 부드러운 몸을 드러낸 순간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되는 것처럼, 변화의 절정은 언제나 가장 큰 위기를 동반한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생명은 가장 깊이 숨 쉬고 가장 빠르게 성장한다. 탈피의 고통과 두려움이 극에 달하는 그 찰나에, 생명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어떤 변화는 오랜 겨울처럼 단단히 얼어붙게 하고, 어떤 성장에는 탈피의 고통이 따른다. 과거의 나를 벗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익숙했던 것을 떠나는 일은 불안하고, 새로운 나를 마주하는 일은 두렵다. 하지만 허물을 벗어낸 동물들처럼, 그리고 혹독한 겨울을 뚫고 나오는 새싹들처럼, 우리는 매 순간 조금씩 성장한다.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며 한 겹의 나를 벗어낸다. 찬란한 햇빛이 스며든 틈 사이로, 새롭게 드러난 것들은 아직 낯설고 투명하다.



바람이 스치고 시간이 흐르면, 더욱 단단해지고, 어느새 또 다른 허물을 준비한다. 그렇게 우리는 계절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고, 다시 태어난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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