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맛볼 수 없다는 것을 그때도 이미.
아마도 그날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될 거란 것을 그때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울역 앞에서 기다리던 나에게 자동차 안에서 손짓을 하던 친구. 실내가 꽤 넓은 차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느라 밖으로 펼쳐진 풍경엔 신경을 쓰지 못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하게 될 건지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사실 별다른 대화도 없었던 것 같다.
저녁 한 끼 먹는데 어디로 가는 거야.
너 한 번도 먹어본 적도... 이제... 먹어볼 일이 또 있기를 기원하며 이곳을 가려고 한다. 기대해
친구는 차분하고 아주 느리게 발을 내딛듯이 말을 하였다.
서울 한적한 골목 어귀, 오래된 석조 건물의 식당 앞에 도착하였다. 간판을 읽을 수 없었다. 안으로 들어서며 예약된 이름을 확인한 뒤 안내를 받아 안쪽으로 안내되었다. 따뜻한 조명이 은은하게 퍼지고 클래식한 샹들리에가 천천히 흔들린다. 커튼이 살며시 드리워진 창가 옆, 촛불이 일렁이는 테이블 위에는 반짝이는 크리스털 와인잔과 정교한 플레이트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창밖으로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가로수가 보이고, 가로등 불빛 아래 느리게 거닐며 속삭이는 연인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그 순간,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흐르며 공간을 감미롭게 점령한다.
아주 단정하고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건너편의 친구에게 귓속말을 하며 웃음 지었다. 그렇게 웃는 여자의 미소와 입술을 가만히 밀어 올리는 그 기술을 그 이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향수 냄새는 매혹적이었지만, 은은했다.
프랑스식 정찬은 혀 끝에서 녹아드는 풍미, 코끝을 스치는 향기, 손끝에서 느껴지는 온기, 그리고 시선이 머무는 화려한 플레이팅까지, 살랑이는 바람이 피부를 어루만지고, 꽃잎이 부드럽게 흩날리며, 은은한 달빛이 촉촉한 공기 속에 스며들어 감각을 일깨운다.
애피타이저로 제공되는 신선한 타르타르는 씹을수록 감칠맛이 배어 나오고, 섬세한 거품이 올라간 비시수아즈는 부드럽게 혀끝을 감싸며 은은한 풍미를 남긴다.
코스마다 흐르는 자연스러운 리듬이다. 애피타이저에서 시작해 수프와 메인 요리를 거쳐 디저트로 마무리되는 과정은 하나의 서사처럼 진행되었다.
프랑스식 정찬도 봄밤처럼 급하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여유롭게 음미해야 하는 시간이다.
특정한 맛과 향을 통해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릴 수 있다.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귤껍질의 향이 퍼지며 어느 특별한 밤을 물 밖으로 끌어올렸다..
불현듯 꽃잎이 흩날리는 길을 걷다가, 혹은 창가 너머 달빛이 비치는 순간 우리는 과거의 봄밤을 떠올릴 것이다. 한때 스치듯 지나갔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 밤의 공기와 향이, 다시금 우리의 감각을 깨우며 추억을 불러온다.
그날 먹었던 음식들과 식기들을 간혹 떠올려본다. 그날 먹었던 음식들의 이름을 한참이 지난 뒤에야 퍼즐을 맞추듯 기억해 두려고 노력했었다 아직도 음식들의 이름은 낯설고 식탁에서 나누던 대화는 건조했었다.
그 많은 음식들을 다 먹으려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지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정찬을 다 먹을 만큼의 시간 동안 산책을 했다.
대화가 없는 이른 봄밤의 산책은 그럴 만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삼월 십 사일. 열 한시 오 분이었다.
대문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