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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지는 단어, 흩어지는 행간들.

동지 여러분

by 적적

도미노를 세우는 사람들은 묵묵히 타일을 하나씩 배치해 나간다. 색을 맞추고, 간격을 조절한다. 글을 쓰는 사람도 단어를 골라 배치하고, 문장을 다듬으며 의미를 조율한다. 그 모든 수고의 결말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 쓰러지는 것이다. 한 개가 쓰러지면 뒤엣것이 따라 쓰러지고, 물결처럼 퍼져나간다. 문장이 이어져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독자의 마음속에서 해석되어 사라지는 것처럼. 그 순간을 위해 도미노를 세운다. 쓰러지는 것을 알면서도, 무너지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위해.


문장을 쌓아 올리고, 정성을 들이지만 결국에는 독자의 내면으로 흩어져 사라진다. 그것이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무언가가 탄생한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쌓아 올리며 살아간다. 하루하루 성취를 쌓고,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높은 빌딩을 짓고, 경력을 쌓고,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그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질 운명을 타고난다. 도미노처럼,


세워진 모든 것들은 언젠가는 쓰러진다. 그 쓰러짐 앞에서 문득 허무함도 느낀다. 무너진 자리에는 텅 빈 여운이 남고, 공들여 세운 것들이 허공으로 흩어진다. 문장을 쌓아 올리고도 그것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곳으로 사라지는 순간, 고요히.



세워진 것이 무너지는 일, 쓴 문장이 흩어지는 일, 비루한 일이지만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왜 세우는 건가 쓰러질 것을 알면서도 왜 포기하지 못하는 건가



색색의 타일이 순차적으로 넘어지며 만들어내는 소리, 물결처럼 퍼지는 움직임은 짜릿한 해방감을 던진다. 그 화려한 무너짐 속에는 어쩔 수 없는 아쉬움도 깃든다. 마치 오랫동안 다듬고 조율한 문장이 마지막 마침표와 함께 무너져 내리는 순간처럼. 문장은 쓰이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흩어지며 완성된다. 단어들은 의미를 머금은 채 독자의 마음속으로 떨어지고, 문장은 그 존재의 역할을 마친다. 쓰러지는 순간을 위해 도미노를 세우고, 사라지는 순간을 위해 문장을 쓴다.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최선을 다한다. 한순간의 아름다움을 위해, 쓰러질 것을 알지만 그 과정을 사랑하기 위해, 우리는 끝없이 무언가를 세운다.



사랑은 관계를 쌓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한 조각씩 쌓아간다.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가가고, 이해하고, 기대를 품는다. 언젠가 사랑은 흔들리고, 무너지고, 때로는 완전히 사라지기도 한다.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비록 끝이 있을지라도,



화가는 붓을 들고, 작가는 펜을 들어 무언가를 창조한다. 세월이 지나면 그림은 바래고, 글은 잊힌다. 문장은 행간에서 조용히 스러지고, 의미는 독자의 마음속에서 부서지며 퍼져나간다. 음악은 공기 속에서 흩어지고, 영화는 언젠가 마지막 관객의 눈빛 속에서 사라진다.

문장은 독자의 기억 속에서 다시 조합되고, 음악은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재생되며, 영화의 한 장면은 어떤 날 불현듯 떠오른다.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의 울림과 감동을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창작한다. 문장이 행간에서 조용히 무너지는 순간, 그것이야말로 완성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쌓아 올린 것들은 결국 쓰러지고 사라진다. 그 사실이 의미를 지우지는 않는다. 단어가 문장을 이루기 위해 배치되듯, 도미노는 쓰러지기 위해 세워진다. 단어는 다음 단어를 쓰러뜨리며 문장을 완성하고, 문장은 의미의 붕괴 속에서 비로소 새로운 파장을 만든다.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무너짐이 아닌 연쇄 속에서 가치를 지닌다.



도미노를 세우는 것은 쓰러지는 것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쓰러질 것을 알면서도 배치하는 행위다. 의미는 흩어지는 순간 완성되고, 무너짐은 곧 새로운 시작이 된다.

쓰러진 자리에는 새로운 도미노가 세워질 것이다. 쓰러지는 것이 끝이 아니라, 파문처럼 번져나가 어딘가에 닿을 것이다. 단어가 행간을 타고 스며들 듯, 의미는 퍼져나가고 강 건너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릴 것이다. 마치 아이가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듯, 다시 사랑하고, 다시 꿈꾸고, 다시 살아간다.


도미노는 쓰러지기 위해 세운다. 쓰러지는 순간까지의 모든 시간을 사랑한다. 언젠가 다시 도미노를 세울 준비를 한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서 흔들리던 갈대가 다시 몸을 세우듯, 우리는 또다시 무언가를 쌓아 올린다. 그것이 살아가는 방식이니까.

쓰러지기를 기다리는 견고한 문장만으로 어떤 그림이 펼쳐질지 알 수 있다.


알면서도 정지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는 이유가.


대문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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