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생각하기로 해요.
긴 머리카락에 껌이 붙었다. 처음엔 알지 못했다. 머리칼이 무겁게 늘어지는 것도, 살짝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것도 익숙한 일이었다. 그녀는 늘 그렇듯 긴 머리카락을 아무렇지 않게 쓸어 넘겼다. 지하철 문이 열리는 순간, 쏟아져 나가는 사람들 틈에서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때였다. 머리칼 사이에 스며든 이질적인 감촉, 아주 작은 저항감이 그녀의 신경을 자극했다.
바람이 아니었다. 손끝을 뻗어 머리칼을 더듬었다. 끈적였다. 미세하지만 확실한 점착감. 손을 급히 뗐으나 이미 늦었다. 손끝에 남은 흔적이 희미하게 빛났다. 언제, 어디서, 누구의 것이었는지도 모를 껌. 그녀의 머리카락 깊숙이 엉겨 붙어 있었다.
바람이 아니다. 손가락을 뻗어 더듬었다. 끈적이는 감촉. 질색하며 손을 떼었지만 이미 손끝에 묻어버린 점착성 물질이 미세한 흔적을 남겼다. 껌이었다. 언제, 어디서, 누가 씹던 것인지도 모를 껌이 그녀의 머리카락에 엉겨 붙어 있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희미하지만 날카로운 단내가 코를 찔렀다. 달콤함과 씁쓸함이 뒤섞인 냄새였다. 오래 씹혀 질감이 무너진 껌 특유의 향, 멀리서도 흔히 맡을 수 있는 인공적인 향이 느껴졌다. 동시에 그 안에는 미묘한 타인의 흔적이 스며들어 있었다. 이질적이고 불쾌한 잔향.
이게 지금 현실인가? 실망과 짜증이 뒤섞인 감정이 차오르다가 희미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상했다. 문득 이 상황이 꿈같다고 느껴졌다. 사실은 현실이 아니라, 단순한 몽상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손끝에 느껴지는 질감과, 공기 속에 떠도는 달콤한 부패의 냄새는 지나치게 명확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곧장 공중화장실로 향했다. 낡은 문을 밀고 들어가자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형광등은 미세하게 깜박였고, 세면대 위엔 물방울이 흩어져 있었다. 그녀는 거울을 마주했다. 창백한 조명 아래,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그 흐름을 어딘가에서 멈추는 지점이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머리카락을 살폈다. 거기, 검은 실타래 사이에 이물질이 박혀 있었다. 단순한 얼룩이 아니었다. 향이 섞인 달콤하고도 기묘한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왔다. 질긴 섬유질 같은 무언가가 손가락 끝에 느껴졌다. 그것이 단순한 껌이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것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딘가에서 흘러온 시간의 잔재였다. 어쩌면 어떤 기억이 달라붙은 건지도 몰랐다. 그것은 단순한 이물질이 아니라, 과거의 한 조각이었다. 사라졌다고 믿었던 것들이, 잊혔다고 확신했던 감정들이 불쑥 끈적이는 형체로 나타났다. 미련. 후회. 지나간 관계들의 잔향. 마치 녹아내리던 껌이 한순간에 다시 굳어버리듯, 희미해졌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다 지웠다고, 다 정리했다고 안심했던 것들이 은밀한 방식으로 그녀를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손끝에 남아 있는 점착감이, 지워지지 않는 흔적처럼 남아 있었다.
손가락 끝으로 그 끈적한 흔적을 다시 한 번 눌러 보았다. 그것을 떼어내야 했다. 하지만 쉽게 떨어질 리 없었다. 가방안을 뒤져 반짓고리안에서 작은 가위를 꺼내 들었다. 손끝에 힘을 주고 가위날을 맞댔다. 머리카락의 일부를 잘라야 한다. 아주 조그만 부분이지만, 그래도 그녀의 일부였다. 단순한 손실이 아니었다. 뭔가를 잘라내는 건 언제나 작은 결단이 필요했다.
가위날이 닿자, 그녀의 마음속에서 낮은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마치 오래된 기억이 마지막으로 신음하는 것처럼. 그 소리를 듣고, 그녀는 머뭇거렸다. 꼭 잘라내야 할까?
문득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여름날, 친구들과 놀다가 껌이 머리카락에 붙었을 때, 어머니가 어찌할 줄 몰라 하며 가위를 들고 있던 모습. 그때 그녀는 펄쩍 뛰며 울상을 지었다. 가위날이 닿았고, 그녀의 머리카락 한 움큼이 바닥으로 흩어졌다. 긴 머리를 애지중지하던 어린 소녀에게 그것은 작은 재앙이었다. 시간이 흘러 머리카락은 다시 자랐지만, 그 순간의 기억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사라진 것은 기억 속에서 가장 선명한 자국을 남긴다.
머리카락 한 줌을 손에 쥐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조용히, 단호하게 가위를 움직였다.
조각난 머리카락이 그녀의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얇고 가느다란 실들이 세면대 위로 흩어졌다. 물방울에 닿아 미세하게 젖은 머리카락이 세면대의 흰 표면에 들러붙었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기억이 마지막까지 남기고 간 그림자 같았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것을 건드렸다. 지워지지 않는 흔적처럼,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 작은 흔적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떼어낸다는 것은 이렇게 명확한 형태로 남는 것일까? 아주 작은 변화일 뿐인데도, 그것이 자신을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거울 속의 그녀가 낯설게 느껴졌다. 머리카락 한 움큼이 사라졌을 뿐인데,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 같았다. 그녀는 아주 천천히, 그러나 깊숙이 숨을 들이쉬었다.
가위를 내려놓고, 떨쳐낸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모아 휴지로 감쌌다. 과거의 흔적을 지우듯, 그녀는 그것을 휴지통에 밀어 넣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어둑해진 거리에 바람이 불었다. 차갑지도, 무겁지도 않은 공기가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이번에는 확실했다. 바람이었다.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깊숙이 스며드는 해방감이었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이제는 가벼운 몸짓으로 흔들렸다. 마치 처음으로 무언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듯, 머리칼이 공기 속에서 떠올랐다.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묶여 있던 감각이 풀어지고, 머리칼 끝에서부터 피부까지 선명한 개운함이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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