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를 만났다.
겨울의 끝자락, 아직 찬바람이 남아 있는 3월의 어느 날이었다. 해가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해 질 녘이면 여전히 차가운 기운이 도심을 감쌌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작은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검은 털과 하얀 털이 적절히 섞인 턱시도 무늬의 고양이였다. 짙은 흑색 털은 밤의 그림자처럼 깊었고, 하얀 부분은 길가에 쌓아 놓은 녹아내리지 못한 눈 같았다. 꼬리는 길고 날렵하게 움직였으며, 작은 앞발은 거리를 헤매며 단련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콧등에는 옅은 흉터가 있었고, 한쪽 귀 끝이 살짝 잘려 나간 듯했다. 얼룩진 거리의 풍경 속에서 어둠과 빛이 함께 공존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눈동자는 길고양이 특유의 경계를 담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따뜻한 불빛을 간직하고 있었다.
고양이는 눈을 마주치고도 도망치지 않았다. 주위를 맴돌며 한 번 가볍게 몸을 늘어뜨리며 기지개를 켰다. ‘괜찮아,라고 말하는 듯했다. 아직 한 살도 되어 보이지 않은 작은 몸이었지만, 그 안에 스며든 시간은 인간의 몇십 년을 뛰어넘는 듯했다. 사람의 손길을 그리워하면서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길고양이의 특유한 태도였다. 눈빛엔 겨울을 견뎌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은 생의 흔적이 담겨 있었고, 그것은 때로 사람보다도 더 강하고 끈질긴 생명력처럼 보였다.
조심스럽게 한 걸음 다가갔다. 가까이에서 보니 이 작은 생명체가 얼마나 치열한 겨울을 보냈을지 짐작이 갔다. 그의 귀 끝에는 약간의 상처가 있었고, 하얀 털 사이로는 얼룩진 먼지가 묻어 있었다. 몸짓은 생동감이 넘쳤다. 오히려 나보다 더 강인한 존재처럼 보였다.
너, 어떻게 이 겨울을 버텼니?
말을 걸어보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행동은 대답과도 같았다. 거리의 벤치 아래를 살펴보다가, 한쪽 담벼락에 목덜미를 비볐다. 이곳이 자신의 영역이라도 되는 듯 편안한 모습이었다. 눈보라가 몰아치던 날, 비가 쏟아지던 밤을 이런저런 곳에서 견뎠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아, 지금 내 앞에서 태연하게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수많은 겨울이 있다. 혹독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때로 넘어지고, 아프고, 외롭다. 이 작은 고양이는 겨울을 버텨냈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삶의 의미가 더 깊어지는 듯했다.
나는 주머니 속을 뒤져 늘 가지고 다니던 사료를 꺼내 내밀었다.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자, 천천히 다가와 냄새를 맡더니 이내 한입 베어 물었다. 하지만 그 눈빛엔 여전히 경계가 서려 있었다. 의심이 많다는 건 길 위에서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일지도 몰랐다. 허겁지겁 먹지도 않고, 한입씩 조심스레 씹어 삼키는 모습에서, 단순한 배고픔이 아니라 생존에 대한 깊은 본능이 엿보였다. 이 작은 존재에게도 겨울을 이겨낸 자만의 품격이 있는 것 같았다.
그 후로도 종종 그 골목을 찾았다. 늘 비슷한 자리에서 맞아 주었고, 날이 풀리면서 털도 점점 윤기를 되찾았다. 이제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내 곁에서 한동안 머물기도 했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 하지만 완전히 닿을 수는 없는 거리에서 말이다.
어쩌면 ‘겨울을 견디는 법’을 가르쳐 주려 했는지도 모른다. 힘겨운 시간 속에서도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살아남는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일임을 말이다. 존재가 그런 희망을 건넸다.
어느새 봄이 완연해졌다. 찬바람 대신 따스한 햇볕이 거리 위로 내려앉았다. 오늘도 그 자리로 향했지만, 이번에는 보이지 않았다. 벤치 아래, 담벼락 뒤편, 자주 머물던 작은 공간을 둘러보았지만,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허전하거나 슬프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가에서 고양이를 만났다. 내가 지나는 길을 알고 있는 것처럼 먼저와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길을 따라 또다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몰랐던 다른 골목에서, 또 다른 봄을 맞이하며. 그리고 언젠가 또 다른 겨울이 찾아오더라도, 분명 이겨낼 것이다. 다시 사라져 가는 고양이에게 이렇게 불러보았다.
겨울아~
때로 지어낸 이름은 견뎌낸 시간의 경외였다.
대문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