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흐르기를 기다려본 적이 있다면.
어 디 보 자…. 분명 눈에 들어가려는 강한 의지를 가진 티끌이었을 거야 안경알을 피해 바람의 각도를 잡고 눈을 뜨는 짧은 순간을 노려 아주 빠르게 침투하려는 훈련된 티끌만이 너의 작은 눈에 들어갈 수 있는 거지.
그냥 빨리 좀!!!
눈에 작은 티끌 하나가 들어가면 본능적으로 손이 올라간다. 아무리 눈을 깜빡이고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문질러도, 그 작디작은 알갱이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미세하지만 날카로운 이물감이 눈꺼풀 아래에서 꿈틀거리며 시야를 흐리고, 따끔거리는 통증마저 느껴진다. 거울 앞에 서서 붉어진 눈을 확인하며 애써 눈을 뒤집어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버린 이물질은 쉽게 빠져나오지 않는다. 이럴 때 가장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해결책은 누군가 눈꺼풀을 조심스레 벌려주고, 강하고 차가운 바람으로 "후"하고 불어주는 것이다. 단 몇 초면 끝날 일인데,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렵기만 하다. 그 짧은 순간, 우리는 홀로 있는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새삼 깨닫는다.
사람들은 저마다 보이지 않는 작은 티끌 하나를 안고 살아간다. 그것은 때로 밤늦도록 가슴을 짓누르는 후회이고, 때로는 가슴 언저리에 날이 선 채 박혀 있는 죄책감이며, 때로는 절대 지워지지 않는 옅은 흉터 같은 상처다. 누구나 자신의 결핍과 슬픔을 품고 있지만, 그 무게를 타인과 나누는 일은 마치 손바닥 안의 모래알을 흘리지 않고 옮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현대 사회는 점점 더 개인주의를 미덕으로 삼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 것이 성숙한 삶이라 가르친다. 눈 안에 박힌 작은 티끌조차 누군가의 숨결 없이 빼내기 어려운데, 마음속 깊이 박힌 아픔을 혼자서 견디는 것이 과연.
어린 시절에는 눈 안에 무엇이 들어가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엄마가 곧 다가와 "어디 보자" 하며 살펴주었고, 짧은 순간 강한 입김으로 불어주었다. 그 순간, 티끌이 사라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별것 아닌 일이 되었다. 어른이 되면, 그런 사소한 도움을 구하는 것조차 주저하게 된다. "이 정도는 스스로 해결해야지." "이런 사소한 일로 민폐를 끼쳐서는 안 돼." 이렇게 마음속에서 스스로를 단련하며, 우리는 작은 티끌 하나도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고 믿게 된다.
세상이 점점 뿌옇게 보이고, 어느 순간에는 방향 감각마저 잃어버린다. 그때 누군가 다가와 눈을 마주 보고, 살며시 불어줄 단 한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우리는 살면서 그런 한 사람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 안의 티끌을 붙어줄 사람은 거창한 존재일 필요가 없다. 오래된 친구일 수도 있고, 연인일 수 있으며, 때로는 우연히 스쳐 간 낯선 사람일 수도 있다. 그들이 우리의 흐린 시야를 맑게 해 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눈을 내어준다는 것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다. 상대에게 자신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맡기는 일이다. 눈꺼풀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릴 때의 가벼운 긴장감, 눈을 마주 보는 찰나의 숨결, 그리고 입김이 닿는 순간의 안도감. 그 짧은 순간, 둘 사이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친밀함이 흐른다. 가끔은 직접 티끌을 제거해 주지 못해도 괜찮다.
"괜찮아? 눈에 뭐 들어갔어?"라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우리는 위로받는다. 적어도 나의 불편함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말이다.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리는 자신의 티끌에는 예민하지만, 타인의 티끌에는 무심할 때가 많다. 누군가 괴로워하고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해 보이더라도 가만히 들여다봐 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때로는 "왜 그래?"라고 묻는 그 한마디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대단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아도, 직접 티끌을 제거해 주지 못해도, 그저 누군가가 나의 불편함을 눈치채고 신경 써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받는다. 때로는 조용히 그 곁에 있어 주는 것이,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후"하고 불어주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인간은 서로를 통해 성장하고, 서로를 통해 치유받는 존재다. 누군가의 티끌을 붙어줄 수도 있고, 누군가의 입김을 필요로 할 수도 있는 존재다. 그러니 더 이상 혼자서 눈을 비비며 애쓰지 말자. 힘껏 불어줄 단 한 사람을 찾아도 괜찮고, 누군가의 눈에 들어간 작은 티끌을 함께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도 괜찮다.
서로를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세상이 원래 어떤 빛깔이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흐려졌던 시야가 서서히 맑아지고, 잊고 있던 풍경들이 다시 눈앞에 선명하게 자리 잡는다.
티끌을 털어주는 것은 시선을 되찾아주는 일이자, 서로의 존재를 비춰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대문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