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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외

손 쓸 수 없잖아.

by 적적



투명한 궤적

― 종이배, 이후


배는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였다고 말한 사람들은 발을 적신 적이 없다.

기억은 언제나 말보다 깊게 젖는다.

종이로 된 것은 모두 가라앉는다.

단지 종이가 아니었던 무언가도

함께였다.


창문은 접히지 않는다.

기억도 그렇다.

아이들은 배를 접지 않았다.

손이 먼저 사라졌다.

남은 건 접힌 것들의 각도였다.



햇빛은 정오를 지나도 도착하지 않았다.

무게가 있는 빛은 없었다.

무게 없는 빛은 증언하지 않는다.

사라진 것보다 먼저,

사라졌다는 사실이 사라졌다.



구명조끼는 입혀졌고,

몸은 그 안에 없었다.

그 구멍을 바다라고 불렀다.



말하지 않았다는 것과

말할 수 없다는 것 사이에

가라앉은 문장이 있다.

사랑은 종이로 접힌다.

펼칠 때, 물기가 묻어 있다.



누군가 말한다.

이건 아직 젖지 않았다고.

무늬는 없다.

움직임만 있다.

움직이지 않는 방식으로,

계속.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날이라고

세월도 무심하다고.

기억은 선연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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