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평범한 이야기라서

나의 친구이야기

by 적적


이 이야기는 너무나 오래된 이야기라서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우린 모두 한 동네에서 자랐고 4학년 때는 모두 한 반이어서 하루 종일 도깨비 풀처럼 서로에게 붙어 있었다 붙어있으면 따가운줄도 몰랐다

엄마들도 다들 친해 한 집에서 저녁을 같이 먹곤 하였다 그중 나와 이름이 같았던 녀석은 또래 아이들보다 두 뼘은 족히 커서 나는 작은 우석 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중 머리카락이 유난히 검고 눈이 컸던 계집아이 하나


우린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으로 사회인으로 커갔으며 서로의 길을 걷느라 점점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가끔 길에서 마주치면 반갑게 안부를 묻곤 했다 녀석은 마당이 큰 집에 살았는데 다른 곳이 다 재개발이 되어도 기왓장 하나 허물지 않고 그 자리를 버텼냈다

녀석도 번듯한 직장을 다니며 승승장구했고 작고 머리카락이 검은 그 계집아이와 결혼을 했다 열 번을 찍어도 꿈쩍을 안 하더라

한 번만 더해보고 포기해야지 했는데 ...라며 너스레를 떨던 녀석은 아들과 딸 연 년생을 낳고 과로로 쓰러졌다

병원에선 더 이상 환자에게 해줄게 없단 말에 그녀는 연명 장치들을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끔씩 녀석이 의식이 돌아오면 우린 겨울에 피어난 꽃송이를 보려는 듯 모든 일을 접고 그 집에 모였다 그렇게 그녀는 십 년을 버텼다 그 녀석은 일 미터 팔십 짜리 누운 나무처럼 간간이 깨어났고 유동식으로 가지들을 지켜냈다 뿌리 없는 나무처럼 아무도 녀석의 죽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우리의 발길도 점점 뜸해졌다


어느 해 만우절 부고를 받았다

당황스럽지 않은 죽음. 나는 저녁 약속을 취소하고 검은 양복을 입고 녀석의 집으로 향했다 문밖을 나서던 그녀가 웃는다

왔구나 오랜만에 보니 반갑다 들어가 봐

그녀 목소리는 서운함과 섭섭함을 누르며 낮게 얼음장 밑을 흐르는 물줄기 같았다


친구들이 마당에 마루에 방마다 앉아서 웃고 있었다 녀석의 방에 들어서자 녀석이 살아 있었다

뒤이어 들어온 그녀가 너희들 내 신랑 잊어버린 것 같아 속상하고 섭섭했어 만우절이라 거짓말 좀 했어 미안해

다 돌아가고 남아있던 나에게 그녀가 입을 열었다.

며칠 전 처음으로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아 라고 얘기해 줬어

죽지도 살아있지도 않은 녀석에게 살아있는 그녀에게

녀석은 그날 이후 이틀 뒤 죽어 버렸다

그녀는 아무도 부르지 않고 가족끼리 장례를 치뤘다


오늘 그녀에게 다녀오는 길이다


다자란 아들을 힘껏 안아보았다

등을 두드려 주었다 미안하다고 말해주었다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하던 아들의 눈빛에서 녀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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