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드러지게 피기까지, 얼마나 많은 안녕이 있었을까
산책은 집으로 돌아오는 행위다. 재활치료가 끝나갈 무렵, 의사는 호전되기 위해선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두 발로 걷는 일에 이미 그 의지를 다 써버린 후였다. 집에서 가장 먼 길까지 걸어가, 집이 저 멀리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비로소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 걸음걸이였다. 출근하는 사람들은 역 쪽으로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 사람들 속에서, 나는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출근의 시간, 퇴근하는 사람처럼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전, 망한 꽃집을 운영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우울의 수용소에 수용 중이던 나를 위해 새벽마다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아침이 오지 않기를 열망하던 나를 꺼내듯 끌어냈다.
잠옷처럼 걸친 옷을 입히고, 때로 이불로 둘둘 말아 조심스레 차에 실었다. 그리고 새벽을 달려 화훼시장에 갔다. 그곳에 도착하고도 나는 늘 차 안에만 머물렀다. 뒷좌석에 실린 꽃들을 무감하게 바라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일주일 동안 차 안에 던져진 채, 주유소에서 나눠주는 일회용 휴지처럼 무심하게 놓여 있었다. 친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처음 꺼낸 말은
졸업 시즌이라 오늘은 너도 좀 도와야 해
화훼시장은 광야처럼 넓었다. 도매상들은 새벽 4시부터 이미 전투 중이었다. 천장마다 박힌 형광등 아래, 꽃들은 각각의 온도와 빛에서 적당한 무게로 숨을 쉬고 있었다. 냉기 어린 꽃 더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의 손엔 비닐봉지, 노란 장갑, 금액이 적힌 메모지, 붉게 일어난 손등이 들려 있었고, 친구는 그 틈을 무심히 통과했다. 나는 한동안 차에서 내리지 않았고, 친구는 그런 나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어느 날 문득, 거베라 다발을 트럭에 싣는 친구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건 초등학교 졸업용.
저건 중학교.
장미는 고등학생 이상.
친구는 꽃마다 역할을 부여하며 쉴 틈 없이 움직였다. 꽃이 상품으로 분류되고, 일회용 감정처럼 팔려나가는 풍경 속에서도 친구는 익숙하게, 한 번도 꽃을 소홀히 다루지 않았다.
바닥엔 물기가 흘러 있었다. 화분에서 흘러나온 물과 아이스박스에서 녹은 얼음물, 흙먼지가 슬리퍼 아래 미끄러졌고, 친구는 그 한가운데를 방수 앞치마 하나로 걸어 다녔다. 나는 그 안에서 리시안셔스 한 송이를 처음 손에 들었다. 종이처럼 얇은 꽃잎이 겹겹이 겹친 채, 아직 다 피지 않은 봉오리.
그건 조문용으로 잘 나가.
친구는 그렇게 말하고, 아무 말 없이 박스를 트럭에 던졌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 꽃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도매상에서 도매상으로, 친구는 무언가를 기억하고, 계산하고, 요청하고, 허리를 굽히고, 농담을 건네고, 꽃을 주문하고, 영수증을 끊어 내 손에 쥐여주었다. 나는 그 뒤를 따라다니며, 생의 온도와 죽음의 냄새가 동시에 묻어 있는 꽃다발을 바라보았다. 한 다발의 꽃보다, 한 송이의 생이 더 무겁다는 것을 그제야 배웠다.
아침부터 배달 가야 하니까, 국수 한 그릇 먹고 가자.
테이블마다 김이 오르고, 삶은 달걀과 잔치국수, 짠 국물이 놓여 있었다. 국수는 뜨거웠고, 면은 생각보다 많았다. 젓가락질을 끝내기 전, 목이 말랐다.
네 덕분에 오늘은 수월하게 일이 끝났네.
친구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운 기억이 없었고, 기여한 감각도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목 안쪽이 아릿했다.
그 계절 내내, 나는 화훼시장에 몇 번이고 다녀왔다. 처음엔 차 안에만 있었고, 나중에는 트럭 뒷좌석에 꽃박스를 옮겼고, 그다음엔 거스름돈을 받았다. 차가운 새벽에, 시한부인 듯 피어나는 꽃들 곁에서, 나도 서서히 피어나거나 시들고 있었다. 지구상에서 피어나는 모든 꽃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나라와 국경, 계절을 가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들. 그곳은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꽃들의 시한부 병동 같기도 했고, 무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오히려 나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시한부 꽃들을 사다가 화병에 꽂고 계십니다.
혼잣말처럼 친구를 비아냥거리면, 친구는 그냥 웃었다.
아파트 정문 앞에, 지난겨울엔 본 적 없는 가지들이 모여 있었다. 가까이 가서 손으로 만져보고 싶어졌다. 아파트 옆 가로수들을 손으로 어루만지면, 가늘고 미세한 맥박이 느껴졌다. 봄이 꽃을 고르고 있었다. 가만히 길가 의자에 앉아, 텀블러 커피를 흔들어 마셨다. 밖에서 커피를 마시면, 세상이 안개처럼 뿌옇게 흐려진다. 봄은 화훼시장에 간 사람처럼 꽃을 고른다. 신비롭고 눈길을 끄는 꽃들과 함께 누구나 좋아할 만한 꽃도 골라, 흙 한 줌만 있는 어떤 곳이든 꽃씨를 심는다. 비가 내리고 나서야 피어나는 건, 꽃의 마음이다. 우리는 뿌려진 이 흙 한 줌에서 지구를 들어 올릴 힘으로 싹을 틔우고, 이 봄 가장 자랑하고 싶은 꽃으로 피어나고 싶다. 바람이 손가락 사이로 휘감기는 꽃잎처럼.
오래전, 봄 늦게 핀 철쭉 한 그루를 본 기억이 있다. 다른 꽃들이 피어날 때는 몰랐다. 하지만 그늘진 모퉁이에 홀로 피어난 철쭉은, 마치 마지막 봄의 상여 위에 놓인 꽃 같았다.
꽃상여.
우리는 늦봄을 그렇게 불렀다. 어울리던 친구가 죽고, 이듬해 또 다른 친구가 죽었을 때도, 우연처럼 늦은 봄이었다. 그렇게 장례를 치르고, 늦은 아침에 집으로 올라가던 길이었다. 철쭉이 왜 그렇게 늦게 피었는지 알게 되었다.
아파트 경계석 위로 심어진 나무들 사이, 손바닥만 한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를 느리게 지나던 태양이 만들어낸, 잠시 햇살이 머무는 자리. 그곳에서 철쭉은 피어났다. 햇살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온종일 그늘이 되는, 그런 곳이었다. 길 건너편에서, 햇살이 머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철쭉을 바라보다가, 한참을 걸어 건널목을 지나고, 다시 한참을 내려와 그늘 속으로 무릎을 꿇고 기어들어 가 철쭉 앞에 섰다. 가슴이 떨렸다. 그제야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피어나는 꽃과 이제 막 땅으로 떨어져 꽃잎이 녹아내리고 있는 순간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자니, 사는 것도, 떨어져 죽는 것도, 한 계절 안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일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말은, 피어나는 의식과 녹아내리는 무의식이 동시에 벌어지는 일이기도 했다. 그 길가에서, 관목 나무들을 헤치고 땅에 떨어진 꽃잎들을 어루만졌다. 햇살에 닿지 못해 아직도 축축한 물기로 녹아내리는 꽃잎들. 미안하고, 고마워서, 조용히 속삭였다.
고마워요.
봄날 동안 고생했어요.
철쭉은 늦게 피어서, 모두가 떠난 봄을 혼자 배웅하는 꽃이었다.
그 꽃 앞에 앉아 조용히 고개를 숙이자
봄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왔다.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