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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휘담 02화

창문을 여는 근육.

희미한 노래한 줄이 삶을 붙잡는 방식

by 적적

스무 살 무렵. 4인용 병실에 있는 창문만 바라보았다. 거대한 바위에 박힌 몸은 한쪽만 밖으로 나오고 반대편은 바위 속에 묻혀버렸다. 창문밖으로 뛰어내릴 생각뿐이었다.



창문은 언제나 잠겨 있었다.

가장 깊은 밤에도, 가장 선명한 새벽에도, 열리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었다. 병실의 창문은 바깥을 보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안쪽에 갇힌 무언가가 흘러나가지 않게 막아두는 문이라고.

한겨울에도 햇살은 들었지만, 바람은 들지 않았다. 바람이 들지 않으면 사람도 쉬이 늙지 않았다. 시간을 견디지 않아도 되었고, 계절이 바뀌어도 감각은 제자리를 맴돌았다. 늦가을에 들어왔고, 병실은 그 계절을 봉인한 채 6개월을 넘겼다.


처음부터 말이 통하지 않는 세계였다.

신호는 손 대신 눈으로 전해졌고, 대화는 짧은 숨과 간헐적인 통증 사이로 흘러갔다. 이름도, 관계도, 기억도 모두 저편에 떨어져 있었고, 누가 누구를 바라보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 창문 쪽을 향해 몸을 틀기 시작할 때, 세계는 방향을 틀었다.

기어가고 있었다. 대리석 아래에 파묻힌 몸을 끌고, 창문 쪽으로. 그것은 어느 날 밤 꿈에서 본 장면이었다.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고, 팔꿈치로 어깨를 밀어냈다. 마치 창문이 바깥이 아닌 끝인 것처럼. 모든 걸 끝낼 수 있는 지점, 침묵의 낙하구처럼.



그녀는 40대 후반처럼 보였다.

침대 머리맡에는 조그만 머리빗이 놓여 있었고, 발치에는 정체 모를 남자가 놓고 간 하얀 수건이 있었다. 세수한 흔적이거나, 아니면 아주 오래전에 마른 눈물을 닦은 흔적처럼 보였다.

남자는 60대 후반쯤 되었고, 처음에는 자주 오지 않았다. 진한 향수를 뿌리고 왔고, 올 때마다 짧은 침묵과 금속성 시계 소리만 남기고 돌아갔다. 그러다 점점 면회 시간이 길어졌다. 허리를 펴지 못하고 앉아 있는 남자의 옆모습이 마치 벌을 서는 아이처럼 보였다. 죄책감인지, 오래된 습관인지, 그의 손끝은 늘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말을 하지 못했다.

오른쪽이 마비되었고, 혀는 안쪽에서 굳은살처럼 부풀어 있었다. 문장을 만들 수 없었고, 고개를 끄덕일 수도 없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녀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중얼거림이었다. 그저 입술이 움직였고, 바람을 타는 숨이 노랫말의 음가를 흉내 냈다. 그런데 한 곡의 노래가 완성되었을 때, 의사들은 모니터를 멈추었고 간호사는 복도를 지나던 걸음을 멈추었다. 멜로디는 정확했고, 발음은 선명했다. 1960년대의 트로트가, 병실에 부는 겨울바람처럼 또렷하게 흘렀다.


「동백아가씨」



자신의 이름조차조차 발음할 수 없던 여자의 첫 문장이었다.



누군가는 소문을 흘렸다. 남자는 남편이 아니라, 평생을 같이 살지 못한 사랑이었다고. 그녀는 첩이었고, 병원비는 사랑의 끝으로 입금되었다고. 면회는 멈췄고, 창밖으로 봄이 스며들기 시작할 무렵, 그녀는 더 이상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래를 불렀다고.

그 노래는 그의 애창곡이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노래는 기억을 향해 떠나는 배였다. 말이 멈춘 세계에서도 멜로디는 흘렀고, 그 흐름 속에 문장은 감정이 되었다. 병실은 다시 살아났다.

침묵은 울림이 되었고, 한 사람의 이야기는 이제 모두의 배경이 되었다.

창문은 결국 열렸다.



나는 무릎으로 바닥을 밀어내는 근육이 생겼고, 어깨로 벽을 지탱하며 몸을 세우는 법도 알게 되었다. 그건 기적도, 회복도 아니었다.



의사들은 학술지에 글을 쓸 수 없었다.

어떤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노래였고, 어떤 의학적 사례로도 규정할 수 없는 회복이었다. 언어는 정지되었지만 음악은 흘렀고, 육체는 감정을 따라 반응했다.

그 누구도 설명할 수 없었지만, 모두가 들었다. 죽음을 멈추는 멜로디를.



그녀는 한동안 노래를 부르다 멈추었다.

병실은 다시 조용해졌고, 창문은 다시 잠겼다. 그러나 그날 이후, 아무도 죽는 꿈을 꾸지 않았다.

노래는 그녀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말이었다고. 사랑보다 먼저 배우고, 외로움보다 오래 견딘 말이었다고.

죽는 일은 늘 조용한 결심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은 숨을 들이마시지 않는 것으로, 또 어떤 날은 창문을 바라보지 않는 것으로. 그건 확실한 선택이라기보다는, 모든 감각이 무너진 끝에서 흘러나오는 기류에 가까웠다. 근육은 굳고, 시간은 흐르지 않았고, 무채색의 하루가 반복되었다. 꿈조차 없는 잠에 빠져들며 몸은 점점 자신을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오후, 노래가 병실을 가로질렀다. 단어 하나 똑바로 말하지 못하던 입술이 정확한 멜로디로 진동했다. "동백아가씨"라는 낡은 노래. 세월에 지워지지 않은 어떤 감정이 그 노래에 실려 있었고, 그녀는 삶의 가장 안쪽에서 그 노래를 꺼내와 마치 외운 듯 부르고 있었다.



그 순간, 이유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생에 다시 발을 걸치게 되었다. 더 이상 죽지 않기로 했다. 거창한 다짐은 없었다. 그저 내일도 그 노래를 듣고 싶었다. 창문 너머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몸을 옮기지 못해도,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이 아주 작은 승리처럼 느껴졌다. 죽는 일은 너무 쉬워 보였다.



그러나 살아남는 일엔 이유가 필요했다.


사진 출처> pinte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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