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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휘담 01화

프롤로그

휘담(諱談)

by 적적

화요일과 토요일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발행된 것도 없고, 언급된 적도 없으며, 기억된 바도 없었다. 고요는 한없이 두터웠고, 침묵은 의도를 지닌 채 배회했다. 익숙한 요일의 흐름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난 공백. 그 속에만 숨어 있던 말들이 있었다.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았고,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문장들. 거기에 머무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고, 그 습관은 곧 은밀한 의식이 되었다.



발화되지 못한 말은 몸 안 어딘가에 고인다. 눈꺼풀 뒤, 혀 밑, 목젖과 식도 사이. 말은 그렇게 틈을 찾아 고인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오며, 대부분 그 충동은 끝내 무너지지 않는다. 삶의 대부분은 침묵으로 채워져 있고, 그 침묵은 대부분 금기로 코팅되어 있다. 도무지 꺼내면 안 될 것 같은 말,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무언가 돌이킬 수 없게 될 것 같은 말, 그런 말들이 있다.



입술 사이에서 맴돌다 스스로 증발하는 문장들. 그들은 형태조차 갖지 못한 채 사라지며, 사라짐 속에서도 흔적을 남긴다. 말을 삼킨 후의 위장에선 늘 무언가 쓰디쓴 액체가 역류했고, 마음은 그것을 죄책감이나 후회로 오해하곤 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말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사실은 마치 깊은 밤 도로 위에 멈춰 선 검은 차처럼 존재한다. 정적 속에서만 분명해지는 실루엣. 사람들은 말하지 않으면 없어진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말하지 않은 것만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 틈에,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에, 단지 흘려보내듯 글을 놓아두기로 했다. 목적은 없다. 계획도 없다. 거창한 선언이나 소명 의식 같은 건 진작에 벗어던졌다. 이건 단지 기록일 뿐이며, 기록은 흔히 고백보다 더 정직하다. 매일 아닌 요일의 틈새에서, 딱히 할 말이 없는 날에야 비로소 말해지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격식을 갖추지 않으며, 대부분 구체적인 독자를 상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들키기 위해 쓰여진다. 숨기기 위해 발설된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발화는 대부분 애매하다. 그러나 애매함 속에만 진실이 깃든다.



어떤 문장은 시작부터 농밀하다. 누가 쓰지도 않았는데 벌써 부끄러운 문장. 그러나 그 부끄러움이야말로 생의 정직한 겹이다. 어떤 욕망은 형체를 갖기 전부터 누군가의 도덕을 위협하고, 어떤 고백은 끝내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문장이란 언제나 늦는다. 그 늦음은 유예이며 동시에 위반이다. 유예된 말은 현실보다 선명하게, 삶보다 진실하게 다가온다. 이 기록은 그런 유예의 집합체가 될 것이다.


브런치북은 월, 수, 금, 토, 일에 발행되었다. 일정하게, 기계처럼, 허용된 감정만을 다듬어 누군가에게 전송되었다. 마치 정제된 음식처럼, 유통기한과 재료가 적힌 감정들. 그러나 그 외의 요일엔, 일정에서 벗어난 날들엔,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들이 남겨졌다. 그것들은 쓰레기가 아니었고, 버려질 것도 아니었으며, 단지 말하기에 너무 끈적하고, 너무 무른 것들이었다. 말하자면 진짜 말이었다. 더러워질 각오 없이 쓸 수 없는 문장. 누구의 동의 없이도 존재하는 말. 삶은 원래 그런 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랑은 그런 말 중 하나였다. 불쑥 찾아오고, 정당화되지 않으며, 대부분은 설명할 수 없는 상태로 끝난다. 몸이 먼저 가고, 마음은 뒤따라오며, 언젠가 그 순서가 바뀌어 결국 무엇이 먼저였는지도 잊혀진다. 그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할 수 있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쓴다. 이해받기 위한 글이 아니라, 오해를 감수하는 글. 부끄러움을 견디는 글. 농밀하고 음란하며 동시에 공허한 말들.



부끄럽지 않은 말이란 이미 죽은 말이다. 살아 있는 말은 언제나 부끄럽다. 그것이 육체를 닮았기 때문이다. 몸은 늘 불완전하고, 마음은 늘 유약하다. 그 유약함을 기록하는 것은 어떤 윤리보다 더 윤리적일 수 있다. 진실이란 언제나 상처받는 쪽에서만 발화된다. 그 발화가 곧 문장이고, 그 문장이야말로 기록이다. 이 기록은 그런 발화를 위한 은신처가 될 것이다.



이 글들은 무작위로 놓일 것이다. 순서도 없고, 결말도 없다. 시간은 뒤 엉기고, 사건은 단서 없이 등장할 것이다. 누군가를 지목하지 않겠지만, 그 누구도 지워지지 않는다. 어떤 문장은 다 쓰기도 전에 지워질 것이고, 어떤 문장은 끝까지 버티다가 겨우 발행될 것이다. 중요한 건 말의 온도와 질감이다. 어떤 말은 철사 같고, 어떤 말은 이끼처럼 퍼진다. 말의 감촉을 느끼는 일이 전부다. 그 감촉을 느끼는 동안만이 비로소 존재하는 순간이다.



이건 이야기라기보다 잔여물에 가깝다. 말해지지 못한 것들의 침전물. 고요한 요일 사이에서만 떠오르는 기억과 감정의 지층. 그것들이 모이고, 퍼지고, 썩기도 하면서 생긴 말의 웅덩이. 거기서 손가락을 적셔보는 일. 문장 하나로 누군가의 인생을 흔들겠다는 생각은 없다. 다만, 누군가의 말 못 한 하루에 다다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휘담, 그건 숨기고 싶은 말들이 아니라, 도저히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말들의 기록이다.




젠장, 이렇게 거창할 필요도 없는 것을….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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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토 연재